1951년 거창 함양 산청 사건
전쟁은 적과 적이 싸운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는, 국가가 지켜야 할 주민이 적으로 분류됐다. 6·25 전쟁은 전선을 넘어 일상의 마을로 번졌고, 그 끝에는 '학살'이라는 이름의 비극이 남았다.
◆ 퇴각 못 한 인민군… 지리산으로
1950년 9월 28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지지부진한 전쟁이 승리로 이어질 거란 믿음이 고무되던 때였다.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이 수복되면서 지리산 일대에 있던 인민군은 북으로 되돌아갈 방법을 잃었다. 이들은 좌익 성향의 무장단체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뭉친 이들은 산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을 수탈하면서 체제 전복을 노렸다. 시달리는 건 주민들이었다. 무장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자유를 빼앗겼다.
결국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육군 제11사단이 창설됐다. 이들은 주민들이 인민군에게 협조하거나, 함께 폭도화한 자들도 적지 않다고 봤다. 공산주의자들의 교묘한 선전에 넘어가, 오히려 경찰과 군을 공격해 왔다고 해석했다.
11사단을 이끌던 최덕신은 결국 '견벽청야'라는 작전을 세운다. 꼭 지켜야 할 전략거점은 확보하되, 부득하게 적에게 내주는 지역은 인력과 물자의 씨를 말려 적이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주민들을 전부 죽여 없애겠다는 끔찍한 계획이었다.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살
1951년 2월 4일. 3대대와 청년 방위대, 경찰 등 총 700여명은 거창 신원면으로 진격했다. 분명히 이곳에 적은 없었다. 하지만 군홧발은 멈추지 않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총살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입을 모아 "인민군으로부터 주민을 지켜야 할 국군이 우릴 학살했다. 말이 되는 소리냐"며 답답한 가슴을 쳤다.
군은 사방에서 주민들을 포위해왔다. 산청, 함양과 유림, 마천 방면에서 포위 작전이 시작됐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2월 8일 아침 동이 틀 무렵에는 산청의 가현마을, 방곡마을에까지 진격했다.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5세 아이에게 조준사격을 가하고, 구덩이를 파 사람들을 몰아놓고 총살했다.
이렇게 죽은 주민만 700명이 넘는다. 산청, 함양지역의 경우 희생자의 60% 이상이 부녀자와 노약자였다. 거창 박산골 희생자의 517명 중 225명은 어린이였고, 부녀자가 183명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사건을 '단일 사건'이 아니라고 본다. 남원, 함평, 순창, 화순 등 1950년 1월과 12월 사이 11사단 예하부대가 일으킨 모든 민간인 학살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구자들은 사건 배경에 주목했다. 이들 사건 모두 후방 게릴라전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군대가 주민을 가장한 게릴라에게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예상치 못한 게릴라전으로 동료를 잃은 군대는 이성을 상실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주민을 '잠재적인 적'으로 보고, 모두 소탕하자는 무리한 작전이 벌어졌다고 봤다. 전투의 이름을 빌려 보복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 유족들 마음 언제쯤 보듬을까
하지만 진상을 밝히고 피해를 복구하는 일은 지지부진하다. 시신 수습은 3년이 흘러서야 가능했다. 신원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시신이 부패해, 남성과 여성, 어린아이로 뼈를 분리해 합동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거창 사건이 알려진 뒤 군 검찰은 책임자들을 기소했고, 이들은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다음 해에 이들은 특별사면됐다. 진상 조사는 없었다.
위령비가 세워진 것도 1960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지만, 그 역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무로 돌아간다. 유가족들이 517명의 사상자가 난 박살골에 세운 위령비는 군인들에 의해 뽑혀나간 뒤 땅에 묻혔다.
1996년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시행됐으나, 배상과 보상 규정은 빠졌다. 이후 배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특별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전부 자동 폐기됐다.
유가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25년 12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이 국회에 재발의됐다. 이 사건으로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과, 그 유족이 국가 배상금과 트라우마 치료 등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계류돼 있다.
유가족의 시린 마음을 달랠 특별법은 이번에야 말로 통과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국회를 찾은 이성열 유족회장은 "거창사건은 다른 사건과 달리 순수한 양민이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이다. 고령의 유족들이 새벽부터 상경해 호소하는 현실을 헤아려 이번 국회에서는 반드시 특별법을 통과시켜 달라"며 소원을 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