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정치팬덤이 패권인 시대상이 최근 여러 선거(22대 총선, 21대 대선, 각 정당 대표 선거 등)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정당정치에 대한 호평의 성적표가 곧 팬덤이라기보다는, 반대로 팬덤이 정당정치를 뒤흔드는 맥락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팬덤정치의 민주주의 기제 가능성 검토'(2024) 저자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미디어는 정보 선택성 때문에 정치 양극화를 조장, 팬덤정치를 부추기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며 "정치인들이 뉴미디어와 팬덤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당정치 영향력이 감소(당내 의사결정 과정의 형해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팬덤정치가 특정 정치인을 부각, 정당과 정책은 희미하게 만드는 현상도 우려점이다. 애당초 대한민국 정치가 YS(김영삼)·DJ(김대중)·JP(김종필) 같은 3김을 비롯한 인물 중심으로 흘러왔으나 민주화라는 성취를 얻든 지역주의라는 부작용을 야기하든 그들의 정치 소신이 적어도 팬덤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1981~1995년 14년 재임(1981년 첫 당선, 1988년 재선 성공)을 두고는 대중적 열광을 넘어선 감정적 신뢰와 제도적 정당성이 성숙한 감정정치, 즉 팬덤정치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충분히 롤모델로 삼을 만한데,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현상의 정치팬덤적 분석'(2025)을 펴낸 윤기석 충남대 교수는 "미테랑 팬덤은 프랑스 민주주의의 감정적 확장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정치적 비판의 자율성을 약화시켰다"면서 "미테랑의 상징 자본이 정부여당 사회당의 정체성을 압도했다. 미테랑의 리더십은 정당 민주주의의 기능을 약화시켰다.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과 토론을 억제하고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를 강화했다"고 풀이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팬덤정치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건 오래된 우방이자 정치적 영향력도 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팬덤으로 일궈낸 정치 승리 사례를 계속 접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트럼프는 팬덤을 등에 업고 2016년 미 대선에서 당선됐다. 하지만 2020년 대선에선 재선에 실패했는데, 이에 트럼프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곧장 움직인 게 팬덤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인준을 막기 위해 2021년 1월 트럼프 팬덤이 벌인 사건이 미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이다.
이어 트럼프에 대해서는 각종 범죄 혐의 기소가 이뤄지며 사법리스크가 고조됐는데, 트럼프는 이때 찍힌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에 '항복은 절대 없다!'(NEVER SURRENDER!)는 문구를 곁들인 머그컵·티셔츠·포스터·차량스티커 등 굿즈를 제작해 팔아 이틀 동안 한화 100억원에 육박하는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대통령 기록을 쓴 트럼프에겐 돈보다 더 절실한 민심이 그만큼 몰려든 것이었고, 트럼프는 2024년 재차 도전한 재선에 성공하며 사법리스크도 해소했다.
트럼프를 주목시키는 독자 SNS '트루스 소셜' 또한 많은 정치인이 탐낼 만한 팬덤 특화 미디어다. 다만 X(구 트위터)의 짝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트루스 소셜 자체는 재정이 열악해 트럼프가 소유한 트럼프 미디어 앤 테크놀로지 그룹이 예산을 지원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역사를 살펴보면 팬덤이 없거나 미미했던 경우는 현재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마지막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차례로 재임한 朴, 文, 尹, 李 모두 팬덤의 존재 없이는 대권 쟁취를 비롯한 정치 행보를 분석할 수 없는 사례다. 無(무)팬덤 정치는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2022년 수감 상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형집행 정지를 신청했음에도 뒤를 받쳐주는 성명 발표나 집회가 없었던 걸 두고 "팬덤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보니 아무도 사면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보면서 이어 "이런 말 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분을 (긍정적으로)평가하는 부분은 팬덤이 없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