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전쟁 당시, 친일 정부의 특무부장을 유인하기 위한 미인계에 스스로 미끼가 된 '정핑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짧은 소설이 있다. 암살 미수에 그쳤지만, 작가는 사건의 추이보다는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세공하였다.
항일운동의 첩보원으로 발탁된 대학생 '왕지아즈'는 친일파 고위 관리인 '이 선생'을 처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빈틈없는 그를 마침내 유혹했다고 여겼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사로잡히면서 뒤틀린 사랑은 끔찍한 참사로 귀결된다. '사랑해 본 적이 없어 사랑에 빠지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던 그녀가 어떻게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독자의 해석을 요구하는 소설의 열린 결말이 답답했던 탓일까. 소품 같던 단편 소설이 세월이 흘러 장편 영화로 거듭난 뒤, 그녀의 행동을 처연히 옹호하기에 이른다.
"그를 대체 뭘로 사로잡아요? 몸으로? 당신은 그를 잘 몰라요.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그가 몇 수 위에요. 나를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내 심장까지..."
흰자위 하나 없는 밤의 눈동자가 그들의 은밀한 순간을 사방에서 지켜보고 있다. 남자가 토해내는 날숨에선 열대우림의 냄새가 난다. 그의 혀끝은 붓이 되어, 경직된 여인의 흰 피부 위에 색정의 주문(呪文)을 쓰기 시작한다. 육체에서 발원한 몽롱한 현기증이 그녀의 정신 속으로 아찔하게 침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심장은 쇳소리를 내는 엔진이 되어, 육중하고 시커먼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를 움직인다.
신음이 기적 소리처럼 울리고 질주가 시작된다. 어느 순간 둘은, 이미 불을 먹고 불을 뿜는 화실(火室)이 된다. 짐승의 본능으로 돌아가 서로를 미친듯이 탐닉하며, 온 세상을 자기 안으로 끌어안으려는 듯, 진득한 인력이 지구의 중력조차 넘어서려 한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얀 시트 속으로 그녀를 상냥히 매장하는 그는 지옥을 가출한 하데스다. 난폭함과 부드러움이 혼미하게 교차하며 둘은 섬뜩한 기적을 연출한다.
"난 노예처럼 그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내 역할을 다해 그의 마음을 얻어내죠. 그는 매번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만족해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거죠.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아채요. 이러다가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점점 두려워져요. 마침내 그가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 내내 구경만 하던 당신들이 뛰어들어와서 그의 머리를 쏴 버릴까봐!"
작은 죽음. 시간의 불가역성을 살해하고 남은 일순간의 영원함, 그렇게 격렬한 정사는 시간의 주검까지 끌어안는다. 불멸처럼 느껴지는 찰나의 환상, 단말마의 경련, 그건 단 두 사람이 만들어낸 절체절명의 절정이다. 바깥 세계에서 확고하던 일상의 버팀목은 무너지고, 둘은 광기와 파멸 그리고 착란의 세계 안으로 가라앉는다.
사랑을 나눌 때, 우리가 원하는 건 결합 그 자체의 합일된 기분일까. 혹은 궁극의 쾌락을 함께 공유하는 위안의 기쁨일까. 아니면 서로를 투영하면서 현실 속에서 희미해진 자신을 되찾고 싶은 것일까. 돌아누워 곤히 잠든 영화 속 연인들의 나신을 보며, 문득 사랑이라는 미명 속에서 몸과 몸 사이에 일어나는 그 수많은 교차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증이 다시 증폭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