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6일, 예측 불가 치료엔 짧은 휴가
지원금 있어도 비급여 항목 많아 부담
대구권역심리상담센터 상담자 증가세
"기자님, 이번 회차도 허탕이네요" 수화기 너머 들려온 이OO(41) 씨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번 시험관 시술동안 여러 차례 병원에서 마주친 그는 늘 "이번엔 될 것 같다"며 희망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다. 배에 멍이 들도록 주사를 맞고, 회사 출장 중에도 시간 맞춰 약을 챙기던 모습이 떠오르지만 결과는 또다시 실패였다.
합계출산율 0.7명.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난임병원 대기실에는 오늘도 번호표를 쥔 부부들이 빼곡하다. 난임 시술 건수는 매년 증가해 최근 3년 새 36.7% 급증했고 재작년 태어난 아이 7명 중 1명은 난임 시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초저출산 통계의 이면에는 극한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아이를 갖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적 숫자와 개인의 하루가 교차하는 지점, 그 간극 속에서 난임 부부의 시간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 난임휴가 집행률 0.75% "현장 모르는 정책"
새벽 6시. 요란한 알람 소리와 함께 이OO(41 아내) 김OO(41 남편) 부부의 하루가 시작된다. 알람을 끄자마자 김 씨는 냉장고로 향해 주사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 몇 개를 꺼낸다. 시험관 시술을 위해 매일 아침 맞아야 하는 주사 3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중 한 가지는 '제조형' 주사라 더욱 손이 많이 간다. 가루약 2개와 생리식염수를 섞어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과정은 꽤나 복잡하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배꼽에서 약 3cm 떨어진 아랫배에 찌르는 방식인데,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아이스팩으로 먼저 찜질한 뒤 오른쪽·왼쪽·아래쪽에 한 방씩 맞는다. "회사 출장 일정 중 시간 맞추느라 차에서 주사를 맞았는데, 아이스팩이 없어 사용을 못하고 맞았더니 배에 멍과 주삿바늘 자국이 남았다. 냉장보관해야 하는 약품이 있다보니 집이 아닌 곳에서 주사를 맞아야할 때 항상 곤란을 겪는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통증이 난임 치료의 '가장 큰 고통'은 아니다. 시험관 시술이라고 하면 흔히 주사 바늘의 아픔을 떠올리지만, 워킹맘에게 더 두려운 건 일상의 조율이다. 회사 출장 중에 주사를 맞는 일은 그나마 쉬운 일이다. 병원 대기가 밀려 반차를 써놨다가 진료 순번이 계속 밀리면, 업무 복귀 시간을 맞추지 못해 다시 상사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왜 미리 말을 안 하냐고 하지만 병원은 그날그날 대기 상황이 달라서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씨는 말한다.
난임치료휴가가 제도적으로는 존재한다. 연 6일의 휴가가 보장되며, 이 중 최초 2일은 유급 나머지 4일은 무급이다. 그러나 실제 난임휴가 집행률은 0.75%에 불과하다. 난임 치료의 특성과 휴가 제도의 시간 구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난임 치료는 사람마다 생리 주기와 호르몬 반응이 달라 시술 날짜를 미리 확정하기 어렵다. 당장 난자 채취 하루 전날에야 병원에서 연락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밤사이 생리가 시작되면 다음날 바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긴다. 이처럼 난임 치료는 예측이 어려운 시점에 갑작스럽게 여러 날을 연속으로 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임에 대한 인식을 '임신이 잘 되지 않는 상태' 정도로 아는 경우가 많고 내과 진료처럼 1~2회 방문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시험관 시술 과정은 복잡하고 진료 횟수도 반복적이다. 제도에 대한 이해를 환자인 내가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회사는 집행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시험관 시술 6회차인 A씨는 "회사에 난임휴가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쓰려 했더니 규정에 없다며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계속 미뤘다. 법적으로 보장되는지도 잘 모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5회차 B씨 역시 "직업군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아예 못 쓰거나, 쓰더라도 눈치를 보며 써야 한다"고 했다.
휴가 일수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아이를 갖기 위해 '과배란 유도-난자 채취-배아 이식'이라는 한 사이클을 진행하다 보면, 본격적인 채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병원을 6번 넘게 방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간 6일의 난임 휴가를 준비 과정만으로 다 써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 씨는 "정부는 시술하는 날만 쉬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병원을 정말 자주 드나들어야 한다"며 "결국 대부분을 개인 연차로 해결해야 한다. 난임 시술을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이를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들이 제대로 치료받도록 정책적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구형 지원금 있지만, 비급여만 수천만원
"이OO님, 1번 방으로 들어오세요" 3시간여 대기 끝에 이 씨의 이름이 불렸지만 긴 대기가 무색하게 진료는 짧게 끝났다. 그리고 이 씨의 손에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PGT)'동의서가 쥐어졌다.
PGT는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기 전, 유전적 결함이 없는 정상 배아를 선별하는 검사다. 필수 사항은 아니지만, 최근 고령 산모의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아지며 의료진도 적극 권유하는 추세다.
문제는 가격이다. 이 씨는 "지난 회차에 PGT 비용으로만 350만 원이 들었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이라 정부 지원금으로는 한 푼도 충당할 수 없었다"며 난색을 표했다. 배아 한 개당 검사비는 평균 30만 원 선. 임신 확률을 높이려면 여러 개의 배아를 검사해야 하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 시술 회차가 늘어날수록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실제로 13회차 시술을 진행 중인 C씨는 지금까지 PGT 비용으로만 무려 3,000만 원가량을 쏟아부었다.
다행히 난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지원금 규모는 매년 늘고 있다. 특히 대구시는 '대구형 난임'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공통안보다 지원 액수를 늘리고 거주 요건 등 문턱을 낮추어 더 폭넓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금의 형태를 두고 아쉬움이 적지 않다. 지원금 총액은 늘었지만 사용 방식이 경직돼 있어 실제 부담이 큰 비급여 항목에는 손을 대지 못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회차마다 정해진 항목, 정해진 단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막상 가장 비싼 검사·약제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지원금이 남아버리는 사례도 빈번하다. 의료진과 난임 부부 모두 "예산은 있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지원 방식의 한계는 이 씨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지난 회차에서 난자를 채취해 배아를 만든 뒤 큰 비용을 들여 PGT 검사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통과된 배아가 없어 결국 '이식' 단계까지 가지 못한 채 회차가 종료됐다. 이로 인해 지원금 80만원이 고스란히 남았지만, 현행 규정상 이는 그대로 소멸됐다. 반면 비급여인 PGT 검사비 140만 원은 고스란히 이 씨의 주머니에서 나갔다. 이 씨는 "남은 지원금 80만 원을 PGT 검사비로 돌려 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됐겠느냐"며 "이월도 안 되고 사라져 버리는 지원금을 보며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박병규 효성병원 난임의학연구센터장은 "비급여 항목은 환자들이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라며 "검사 비용이 높은 만큼 의료적 필요성을 세밀하게 따져 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항목별로 금액을 제한하기보다, 정해진 지원 한도 내에서 환자가 필요한 진료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임신 바우처' 방식이 훨씬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거듭되는 실패에 우울…회차 쌓일수록 급증
아침부터 함께한 이 씨의 하루가 유난히 길다. 고작 하루를 따라다녔을 뿐인데, 기자는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됐다. "끝이 보이는 싸움이면 좋을 텐데, 그죠?" 기자의 말에 이 씨는 잠시 생각을 멈추더니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임신이 되면 좋겠지만, 내 삶에는 또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다. 지금은 임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지만, 혹시 안 되더라도 그때는 또 다른 가치를 향해 열심히 살아볼거다."
이 씨가 처음부터 이렇게 담담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그는 심각한 자살 위험이 발견돼 정신과 전문의에게 인계됐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난임 시술 건강영향평가 및 지원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난임 시술 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여성은 10명 중 1명(9.5%)에 달한다. 시술 전에는 응답자의 67.6%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답했지만 시술 후에는 37.0%로 급감했다.
이에 정부는 난임 및 유·사산 경험 부부, 임산부·양육모를 위한 '난임·임산부 심리상담센터'를 전국 10개 권역에 운영하고 있다. 주간매일이 수집한 대구권역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 상담건수는 2023년 6,200건 → 2024년 6,000건 → 2025년(12월 10일 기준) 6,000건으로 매년 1,000명 규모의 여성이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며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은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
대구권역 상담센터 팀장은 한 사례를 떠올렸다. "홍보 부스를 열었는데 시험관으로 아이를 얻은 여성이 지나가다 들렀다. PHQ-9 우울감 검사를 해보니 수치가 굉장히 높게 나오더라. 난임 시절 힘든 마음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참고 지나온 것 같았다. 난임 여성은 출산 후 우울감에 취약할 수 있다."
팀장은 "센터에 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먼저 찾아가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9년 개소 초기에는 병원을 직접 찾아 검사지를 배포하고, 시술을 받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평가를 진행한 뒤 상담을 연계하는 방안을 의료진과 논의한 적도 있었다. 현실적인 제약으로 중단됐지만, 그는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 아쉬움은 난임 시술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붕괴의 시점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이다. "1회차부터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3~4회차부터 힘듦이 시작되고, 5회차 이상 고차수로 넘어가면 많이 무너진다. 그 구간만이라도 병원과 정서 지원책이 연계된다면, 우울감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