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난 혼자" 외치는 아이 곁 남아 있는 어른들

입력 2026-01-15 12:30:00 수정 2026-01-15 15: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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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청소년자립지원관의 하루

8일 대구시청소년자립지원관 직원이 독립 초기의 어려움을 겪는 후기 청소년 가정을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작은 지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준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8일 대구시청소년자립지원관 직원이 독립 초기의 어려움을 겪는 후기 청소년 가정을 방문해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작은 지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준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이 세상에서 저는 혼자예요." 청소년쉼터와 복지시설을 전전하다 홀로 세상에 나온 송모 씨. 경제적 어려움 속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최모 씨. 유일한 가족이던 부친이 감옥에 간 이모 씨. 이들의 나이는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어른의 부재 속, 이들은 몸만 자랐을 뿐 삶을 견딜 만큼 단단해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된다는 확신,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있다는 감각은 여전히 낯설다. 대구광역시청소년자립지원관은 바로 그런 이들의 곁에 서는 어른이다.

◆ 문 두드리는 청소년들

청소년자립지원관((사)풀꽃유스)을 이용하는 청소년은 쉼터나 회복지원시설을 퇴소한 뒤 가정 복귀가 어렵거나 뒤늦게 위기가 드러났지만 제도 안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만 19~24세 후기 청소년이다.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주거와 학업, 취업, 관계 형성의 기반이 취약해 독립적인 삶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비수도권 최초로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이 문을 열었다.

김은지(26) 씨의 하루는 문을 두드리는 청소년들을 살피는 일로 시작된다. 인터넷 신청을 거쳐 상담 인터뷰, 사례 심의위원회까지 통과한 청소년이라 해도 서류 몇 장으로는 그 아이를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김 씨는 신청서와 심의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며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쭈뼛대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대하는 김 씨의 태도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기 이야기를 감추고 싶어해요. 그게 약점이 될까 봐요. 그런데 여기서 처음 느끼는 거죠. '아, 남에게 이야기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 주거·취업·생활…실질적 도움

점심 무렵, 현관 앞에는 택배 상자가 쌓여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생필품 신청을 받아 담당 청년들에게 나눠줄 물품이다. 전지혜(30) 씨가 박스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늘 가정 방문이 있어서요. 이따가 직접 가져다주려고요."

이서원(가명·21) 씨의 집도 전 씨가 함께 구했다. 인근 부동산을 돌며 LH 공공임대주택을 알아봤다. "보통은 부모가 집을 구해주잖아요. 계약서나 채무 관계도 함께 확인해 주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이런 걸 잘 몰라요. 혼자 집을 구했다가 사기를 당한 경우도 적지 않죠"

제도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최근 성평등가족부와 국토교통부의 합의로,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LH 공공임대주택 지원 요건이 완화됐다. '시설 이용 2년 이상'이라는 조건이 사라진 것이다. 시설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주거 위기를 겪는 청소년이 많다는 현실이 뒤늦게 반영됐다. 전 씨는 이러한 변화가 무엇보다 반갑다고 말했다.

지원은 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취업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일경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일반 취업 프로그램에 바로 참여하기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일'이 아닌 '교육' 형태로 현장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생활 전반을 챙기는 역할도 중요하다. 전 씨는 "엄마처럼 잔소리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알려준다"고 말했다. 운전면허 학원비가 부담돼 도전조차 못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기초생활수급자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면허 취득 지원 제도를 안내한다. 장학금, 각종 지원 사업 정보 등 다양한 선택지들을 곁에서 함께 짚어주는 일 역시 자립지원의 일부다.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 선생님들이 청소년들 대상으로 주거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청소년자립지원관 선생님들이 청소년들 대상으로 주거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시도때도 없이 '카톡' 퇴근이 없는 삶

집에 돌아가서도 김지영(48) 씨의 하루는 끝나지 않는다. "퇴근이 따로 없어요. 아이들이 저희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거든요"

연락은 예고 없이 온다. 갑작스러운 구급대원의 연락, 경찰서에서 걸려오는 전화. 자해나 자살 시도를 했다는 소식, 길거리에서 싸움이 붙었다는 이야기. 김 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들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성인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자립지원관이 이들을 돕는 일을 두고 의문을 갖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몸만 자란 아이들이에요. 뭐든 쉽게 포기하고, 마음이 안정돼 있지 않아요."

뿌리가 단단해야 가지가 뻗고 꽃과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이들은 뿌리를 깊게 내릴 시간도, 토양도 없이 자랐다. 작은 파도에도 크게 흔들린다. 신뢰를 맺어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거나, 도망치듯 현장을 떠나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김 씨와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이어가며, 때로는 집을 찾아가 시간을 들여 기다린다. 그렇게 다시 연결된 아이들은 조금씩 사회로 발을 내딛는다.

이준기(49) 관장은 "취업에 성공한 뒤 첫 월급으로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올 때면 정말 뿌듯합니다.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라며 현장의 변화를 전했다. 이 관장은 지역 후원단체와 연계기관의 도움에도 감사를 표했다. "매년 약 50명의 청소년들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센터 포함 여러 어른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길 바랍니다"

대구광역시청소년자립지원관에 근무중인 선생님들. 이들은 말한다.
대구광역시청소년자립지원관에 근무중인 선생님들. 이들은 말한다. "매년 약 50명의 청소년들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어른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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