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페인트와 방치된 빈집, 이용객 없는 거점 시설은 예산 투입의 무색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여전히 편의시설 하나 없다며 평했고, 무작정 지어진 거점 시설의 운영 부담까지 안았다. 수십억 원이 투입된 대구 도시재생사업은 주민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 예뻐졌지만, 여전히 텅 빈 마을… 체감 효과 불투명
지난 2일 배나무 샘골로 불리는 남구 이천동 403번지 일대를 찾았다. 동네 입구로 가는 길은 황량했다. 풍성한 수풀 속에 세워진 '이천동 시간풍경 골목길'이라는 안내판만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시간 풍경이 흐르는 배나무 샘골'이라는 주제로 도시 재생 사업이 이뤄진 마을이다. 남구청은 지난 2019년부터 5년간 사업을 벌여왔다. 이곳에만 117억8천300만원 가량이 투입됐다.
마을을 되살리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을 분위기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형형색색의 벽화만이 사람 없이 황량한 골목을 지켰다. '샘골'을 형상화해, 긴 골목을 따라 칠해진 파란색 페인트는 군데군데 갈라져 흉물이 됐다.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을 지난 후 골목은 점점 더 좁아졌고, 어두워졌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난 오래된 주택은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방치돼 있었다. 깨진 시멘트와 장독, 생활 쓰레기와 다 늘어진 빨랫줄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빈집에서 사는 길고양이는 이 동네의 골칫거리다. 빈집이 하나 둘 늘어나며 고양이도 개체 수를 늘렸다. 주택 앞에 변을 보지 않도록 하고자, 주민들은 담벼락 곳곳에 페트병을 늘여놓는 궁여지책을 내놨다.
말 그대로 '죽은 마을'이었다. 100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이후에도,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 "도시재생? 체감 못 한다"
"도시재생 사업 효과? 글쎄요. 한 번 마을을 둘러보시면 알 텐데요. 어디가 재생됐다는 거죠?"
김명식(가명·49)씨는 남구 이천동 403번지 일대에서 태어나 쭉 이곳에서 자랐다. 군대에 다녀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천동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골목 곳곳은 명식씨의 놀이터이자 등·하굣길이었다. 어렸을 적 골목을 요란하게 울리며 뛰어가는 초등학생이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부들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골목에 자리잡은 주택들은 하나 둘 연기를 피웠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이천동은 조용해졌다. 명식 씨의 친구들은 결혼, 취업, 자녀 교육 등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마을을 떠났다. 골목 곳곳에 놓여진 빈집은 명식 씨의 친구들이 살던 옛집이었다. 40년이 훌쩍 넘은 주택들은 워낙 오래됐다보니, 수리를 거듭해도 새 주인은 찾아오지 않았다.
신축 건물이 없으니 셋방살이를 자처하는 젊은이도 줄었다. 명식씨는 "남은 사람은 어르신뿐이다. 옆집, 앞집 지인들에게 의지해 남은 생을 살아가는 노인들만 남은 셈이다"고 했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상황은 반전됐을까. 그는 "전혀 체감할 수 없다. 바뀐 게 없는데,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되려 물었다.
좁다란 도로 환경은 그대로였다.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은 보행기를 끌고 불법주차 차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편의점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빈집도 그대로 방치됐다.
벽과 계단에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구청 홍보 게시글을 본 관광객들이 생겼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 만한 상권도 없다보니, 이들은 잠시 마을을 둘러보다 떠났다.
마을 특색을 살리겠다며 붙인 '배나무 샘골'이라는 사업 이름도 생소했다. 마을에 남은 배나무는 열매가 두어 개 밖에 열리지 않아 존재감이 희미하다. 그는 "결국 왜소한 배나무 옆에 '가짜 배나무'를 심더라. 관광객을 불러오고자, 마을 사람들도 잊은 지 오래인 배나무 얘기를 억지로 꺼내 온 것 같다"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이 바뀌었다'고 체감한 건 훨씬 이전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천동 마을에는 차량 두 대가 너끈히 교행할 수 있는 넓은 길이 생겼다. 차량 진입이 손쉬워지고, 걷기도 쾌적한 도로가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늘었다. 오전 7시가 되면 출근길, 등하굣길의 오르는 이들로 도로가 복작해졌다.
도로와 함께 도시가스가 들어서고, 산발적으로 나 있던 우물도 메우면서 삶의 질은 더욱 올라갔다. 신식 빌라도 하나 둘 건설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재생'보다 여전히 '인프라 개발'에 목말라 있었다. 명식씨는 "삶의 질을 높이는 건 편의점이나 주차장, 큰 도로다. 이번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빠진 것들이다"며 "주민들에게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는 질문 없이 사업이 진행했으니 당연한 결과다"고 했다.
◆ "장 보러 먼길… 차 없이는 불가"
권영교(67)씨는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이천동 일대로 이사를 왔다.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본가에서 떨어져 아들과 함께 머물 곳을 찾은 결과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 새벽 운동을 할 수 있는 공원이 가깝다는 점은 영교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같은 마음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 늘어났냐는 질문에, 영교씨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영교씨는 "이곳 저곳을 개선하느라 부산스럽긴 했다. 하지만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마을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유입 인구가 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영교씨는 고민도 하지 않고 '편의시설'을 꼽았다. 마트는 커녕, 편의점과 슈퍼도 없어서다.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영선 시장이 있지만, 식재료를 들고 먼 길을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
영교씨는 "조용한 분위기 말고는 이점이 크게 없다. 시장에 가거나 마트에 방문하려면 차가 꼭 필요하다"며 "근처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작은 마트, 편의점 하나라도 들어서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시장에 방문하고 싶어도, 손쉽게 돈을 찾을 수 있는 은행이 가까운 곳에 없는 점도 문제다. 휴식을 즐기거나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도 없다. 영교씨는 다행히 무사히 적응을 마쳤지만, 새 주민이 들어온다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걱정했다.
◆ 무작정 지은 건물… 활용도 높이느라 애먹어
"우리 동네 초등학교 입학생이 올해 38명이에요. 75세 이상 노인은 1천500명이죠. 어때요. 도시재생이 된 거 같습니까?"
2일 방문한 대구 동구 복합근린허브센터. 지난 2023년 11월 개소한 이 시설을 짓는 데만 53억원이 들었다. 이 건물 운영은 '소목골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몫이다. 건물에 딸린 주차장과 카페, 치킨집을 운영하며 수익 창출을 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날 점심 식사를 마친 주민 4~5명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렴하고 따뜻한 커피는 주민들을 단골로 만들었다. 단골 주민들은 카페 근무자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카페에 녹아들었다.
◆ 수익 창출에 골머리 앓아
그 내막은 순탄치 않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주차장을 제외한 대부분 수익 사업이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다.
1층에 있는 치킨집이 들어서기 전, 조합은 맥주가게 '까치펍'을 야심차게 차렸다. 소목골에서만 볼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고, 마을 사랑방 역할을 도맡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지역성'을 살리자니 수익이 변변찮았다.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단 3달만에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딸린 조합원들에게 인건비를 주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고, 사업 취지에 공감한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업무 협약을 맺고 겨우 수익을 내게 됐다. 이곳도 영업을 오래할 수록 인건비가 불어나, 하루 7시간만 문을 열기로 했다.
이것저것 사업을 벌려봐도 인건비만 겨우 감당하는 '풍전등화' 신세다. 손에 떨어지는 수익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운영을 도맡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임기를 딱 1년 남긴 김광수 소목골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의 시름이 깊은 이유다.
김광수 이사장은 "돈 한 푼 받지도 않고 사무실에 살다시피 하며 조합을 운영하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어 다음 이사장을 맡을 사람이 있겠냐. 젊은 피도 수혈되지 않아, 결국 노인들이 어렵게 꾸려나가야 한다"며 "동네 살리는 데 220억이 들었다. 차라리 현찰로 줬으면 이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고 했다.
◆ 청년 없는 곳에 들어선 청년 센터
남은 공간인 2층에 들어선 청년센터도 고민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은 예약자를 대상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강의실을 대여해주고 있다. 시설 만족도와 재방문율은 높지만, 새로운 이용객이 눈에 띄게 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또 생긴다는 점도 우려된다. 차로 15분 거리인 경북대 일대에서 새로운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이곳에도 청년 창업과 모임을 지원하는 거점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동구 청년센터 이용자 다수가 경북대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가 분산돼 동구 시설의 활용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구 청년센터 관계자는 "건물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근처 상권이 발달되지 않은 데다가 접근성도 좋지 않아 청년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년센터가 있으면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구시장도 활성화 될거라 기대했지만, 시장도 센터도 이용객이 크게 늘지 않았다"고 했다.
◆ 비슷한 시설 우후죽순… 똑같은 숙제 안아
1층 카페와 조합 사무실, 구청이 관리하는 주거복지센터까지. 달서구 송현희망센터는 동구의 시설과 똑 닮았다. 운영 책임인 배민균 든들행복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역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이 곳은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마진이 남으면 조합원들끼리 나누는 식이다.
새로운 수익 모델도 찾지 못했다. 결국 기댈 곳은 구청뿐이다. 최소한의 운영비도 없어, 부족한 카페 테이블을 구매하는 것조차 부탁해야 한다. 하지만 구청 예산 상황도 넉넉하지 않아 요구가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주요 도시재생 사업 중 하나인 '주차장' 사업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한탄했다. 만들어진 주차장은 고작 19면. 단독주택이 많은 마을 특성상, 골목을 꽉 채운 불법주차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러니 운영이 버거운 송현희망센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배 이사장은 차라리 이 자리에 주차장을 세운 뒤 이용비를 받았더라면, 조합 살림이 나아졌을 것이라 본다.
배 이사장은 "멋들어진 건물이 지어지고, 무허가 건물들이 정비된 건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건물 관리를 전문성 없는 우리가 맡으려니 감당이 안 된다"며 "도시재생사업 기간이 끝나고 현장지원센터가 철수한 뒤, 맡을 사람이 없어 겨우겨우 조합이 떠안게 됐다. 제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