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부터 육아 플래너까지 AI 적극 활용
음성 모드 활용하면 아이와 대화까지
과도한 의존·환각 현상…부작용 우려도
2024년생 용띠 아들을 키우며 직장에 복귀한 초보 워킹맘 기자입니다. 퇴근하자마자 육아 출근, 무한 굴레에 갇혀 잠은 줄고 체력은 바닥났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매일 쑥쑥 자랍니다. 웃고 울며 버티는 육아의 실체를 낱낱이 기록합니다. 〈편집자주〉
한밤중 거실 창문이 열리고 붉은 옷에 흰 수염을 한 산타가 조용히 들어온다. 잠든 아이의 숨결을 살피듯 가까이 다가가 나직이 말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루돌프와 함께 사라진 산타는 스마트폰 속 5초짜리 영상으로 남았다.
아이의 동심을 지키는 일은 이제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이 장면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인공지능(AI). 다음날 화면을 본 아이는 "진짜 산타가 왔어!"라며 두 발을 동동 굴렸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부모들은 AI를 활용해 산타가 실제로 다녀간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만들었다.
◆ 스마트 육아 '잘 활용하면 효과 만점'
생성형 AI 하나면 어설픈 분장을 할 필요도, 집안 곳곳에 시커먼 발자국을 찍어둘 필요도 없다. 미리 찍어둔 아이 사진을 인공지능(AI) 비디오 생성기에 넣고 '인사하는 산타'를 주문하면 끝. 몇 분 뒤 완성된 영상 속에서 산타는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든다. 부모가 직접 연출하던 '산타의 흔적'은 이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더 정교하게 재현된다.
착한 아이에게 산타가 왔다면 말 안 듣는 아이에겐 도깨비가 온다. '미운 네 살'을 키우고 있는 이은재(34) 씨는 AI 훈육의 즉각적인 효과를 체감했다고 말한다. "산타 영상이랑 비슷해요. 주인공만 도깨비일 뿐이죠." 잠든 아이 뒤로 도깨비가 나타나는 영상이 재생되자 아이는 실제 상황처럼 놀랐고 그날 밤은 비교적 수월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영상 속 도깨비는 "오늘도 늦게 잤지? 엄마 아빠 말 안 들으면 잡아간다"고 으름장을 놨다.
생생한 이미지와 목소리가 아이의 감각을 자극하며 부모가 직접 설명하기 어려웠던 영역까지 AI가 채우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제 어머니, 그러니까 아이에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이가 늘 묻더라고요. '왜 우리 할머니는 없어?'라고요. 그 질문에 답하는 게 늘 어려웠는데, AI로 한 번 시도해봤어요."
권혜란(35) 씨는 사진 두 장을 AI 앱에 업로드했다. 한 장은 생전의 어머니, 다른 한 장은 딸의 사진이다. 그러자 화면 속에서 아이와 할머니가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손을 잡았으며, 볼을 맞대기도 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권 씨는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이 영상처럼 우리 태리를 꼭 안아주고 계셔" 빛바랜 사진 속 어머니가 손주를 품에 안은 장면을 지켜보며 그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생성형 AI는 사진과 음성을 결합해, 존재하지 않거나 만날 수 없었던 장면을 화면 속에서 다시 만들어낸다. 동심을 자극하는 산타부터 가족의 부재를 메우는 영상까지. 활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 식단·일과표 짜주는 '육아 플래너'
보여주고 들려주는 역할을 넘어 AI는 육아의 계획과 판단까지 맡고 있다. 이유식과 수면, 놀이, 감정 관리까지 AI에게 묻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기자가 '9개월 아이 하루 일과표를 짜달라'고 입력하자 AI는 수면·수유·놀이 시간을 한 번에 정리해 줬다. 집에 있는 재료를 입력하자 이유식과 유아식 식단도 제안했다. AI가 일종의 '육아 플래너'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건강과 관련한 질문도 예외는 아니다. 병원 진료도 끝난 늦은 저녁, 등에 올라온 빨간 반점에 우선 AI부터 찾고 본다. 사진을 첨부해 질문을 입력하자 곧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태열 같은데 혹시 목욕을 마친 직후인가요. 물 온도가 너무 뜨겁지는 않았을까요?' 다소 보기 불편한 대변 사진에도 친절하게 답한다. '사진을 보니 물기가 많아 보이긴 하네요. 혹시 냄새는 어떤가요?'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AI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육아의 동반자가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내 아이에게 맞는 답'을 해준다는 점도 부모들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인터넷에는 육아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중 어떤 것이 내 아이에게 적합한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반면 AI는 아이의 나이와 발달 단계, 부모의 생활 여건 등을 입력하면 상황에 맞는 놀이법과 육아 팁을 실시간으로 제시한다.
◆과도한 의존·환각 현상 우려도
"딸기는 왜 맛있어?" "원숭이는 왜 걸어 다녀?"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질문에 부모 대신 AI가 답한다. 챗GPT 음성 모드를 켜두면 아이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끝말잇기를 하고, 스무고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부모가 직접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을 AI가 대신하는 것이다.
송지안(38) 씨는 챗GPT 음성 모드를 활용해 아이와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있다. 송 씨는 "아이가 크면서 어른들도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할 때마다 고민이 많았는데, AI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AI가 육아 전반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부모와 아이가 서로 생각을 나누고 관계를 쌓아가는 시간이다. '정답'을 알려주는 역할까지 AI에 맡길 경우, 부모의 설명과 대화가 차지하던 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AI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이른바 '환각 현상'도 문제로 꼽힌다. 아이의 질문에 틀린 답을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조언을 줄 경우 이를 걸러낼 주체가 없다는 것. 송 씨는 "AI와 대화하는게 이상해서 찾아봤더니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데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웃고 있더라"며 "육아 서적 추천해달라는 질문에도 존재하지 않는 책을 답했다. 편리하긴 하지만 언제 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마치 사실처럼 알려줄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AI의 육아 침투는 콘텐츠 산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튜브에서 AI를 활용해 초저비용으로 유아용 영상을 제작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동요 가사를 챗GPT로 생성한 뒤, 이를 AI 영상 제작 도구에 입력해 영상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콘텐츠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장시간·고자극 구조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인간의 뇌가 5세 이전에 약 90% 형성되며, 2세 미만 아동의 미디어 노출은 '매우 제한적' 수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AI 기반 유아 콘텐츠는 이러한 권고 기준을 쉽게 넘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후 1~3세 영유아가 AI 영상을 반복적으로 접할 경우, 뇌 발달이 둔화되거나 현실 인식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육아의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는 만큼 기술의 편의성 뒤에 숨은 위험을 관리할 사회적 기준과 부모의 개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