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한국 연극사에서 역사물(史劇)을 코미디로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은 적지 않다. 그 대다수가 단순히 웃음을 위한 극적 오락물이 아니라, 시대의 정치적 균열과 공동체적 모순을 웃음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장르적·미학적 장치였다는 점에서 주목되어 왔다. '사극 코미디'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나 역사적 고증을 비틀어놓은 소재들을 늘어놓는 가벼운 장르가 아니라, 정권·권력·민중·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는 풍자극(諷刺劇)의 한 갈래다. 극단 예도의 〈어쩌다 보니〉(작·연출 이삼우)는 겉으로 보자면 작정하고 웃기려고 하는 연극이다. 풍자적 기반은 다소 취약해 보일 때도 있지만, 풍자극의 전통성을 내재한 관객참여형 퓨전 사극 코미디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 풍자극의 전통에서 역사·신화·전통 서사를 코미디 형식으로 재창조하는 창작 작업은 넓게 보면 판소리 사설을 효시로 하여 탈춤과 마당극·놀이극 계열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봉산탈춤·양주별산대놀이·하회탈춤은 조선 후기 양반 사회를 조롱하는 풍류의 민속예술이었고, 양반과 권력을 '비틀기'는 풍자의 통로였다. 이런 점에서 고전 역사 코미디는 결코 가벼운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립창극단의 《배비장전》이나《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담긴 조선시대 성풍속도와 권력 비틀기에 대한 풍자,《춘향》과《수궁가》가 보여준 조선 사회의 위계 구조에 대한 전복적 해석 등은 '역사극의 코미디적 재구성'이 곧 '권력을 웃음으로 해체하는 장르'임을 보여준다. 경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 예도의 〈어쩌다 보니〉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사극 코미디의 전통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극을 퓨전화하여 마치 개그콘서트의 사극 코너를 연상시키는 웃음으로 치환하고 있는 관객참여형 연극이다. 관객은 극 중 장면의 인물이 되어 직접 대사를 표현하기도 하고, 위기의 극중 장면에서 적군이 되거나 극을 환기하는 서사극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어쩌다 보니〉의 특징은 사극 코미디의 형식, 권력 풍자, 민중 중심의 이야기, 장르적 비틀기를 퓨전화하여 관객참여라는 형식을 빌려 즉흥성의 '날것'을 가공하고,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서사 감상보다는 참여를 유도해 극을 체험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제연극의 역동성의 전환과 역사성
1989년 창단작 〈일요일의 불청객〉을 기점으로 설립된 극단 예도(藝島)는 거제 지역 연극 생산의 핵심 기반을 마련한 단체로 평가된다. 같은 해 출범한 거제연극협회와 더불어 예도는 거제에서 연극을 지속적으로 생산·유통할 수 있는 구조를 제도적·조직적으로 구축하게 된다. 창단 멤버가 교사, 조선소 직원, 신문사 기자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되었다는 기록은, 당시 지역사회에서 연극이 전문적 훈련보다 자발적 문화실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스템의 구성적 특성은 이후 예도가 30여 년간 유지해 온 공동체적 동력의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도는 창단 직후부터 매년 2~3편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지속적인 창작활동 기반을 다졌다. 1992년 6월 19일, 회원 25명으로 구성된 예도는 한국연극협회 산하 장승포지부로 정식 인준을 받으며 지역 연극계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어 제11회 경남연극제 우수작품상(1993), 김우섭 배우의 최우수연기상 수상(1994) 등 초창기 성과들은 예도가 지역연극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단공연 〈일요일의 불청객〉에 1천여 명의 관람객이 몰린 사실은, 거제 시민들이 이미 지역에서 연극을 향유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990년대 예도는〈광인들의 축제〉,<결혼>,방황하는 별들〉,<용감한 사형수〉,〈등신과 머저리〉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며 지역 관객의 연극적 감수성을 확장시켰다. 특히 1995년 윤일광의 창작극〈7×7=49〉는 지역 서사가 본격적으로 극적 형식으로 전환되는 계기였으며, 이는 지역연극이 단순한 향토성 재현을 넘어 독립된 창작의 장으로 이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공연이었다. 마당극·부조리극·사실주의극 등을 아우르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거제연극의 미학적 범위를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999년 대우조선의 지원으로 옥포극장(玉浦劇場)이 개관되면서 예도는 생활 기반의 연극을 넘어 도시 차원의 연극 유통 시스템을 확보하게 된다. 이후 〈안 내놔! 못 내놔!〉, 〈돼지와 오토바이〉,〈용띠 개띠〉,〈달빛 속으로 가다〉,〈배비장전〉,〈파라독스〉,<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찔레꽃〉등이 무대에 올랐고, 예도는 지역의 언어·정서·문화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연극적 장르를 수용하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지역극단이 장르적 편향 없이 꾸준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예도의 작품 세계는 서사적 정교함과 무대 형상화의 완성도 면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이삼우 연출의 합류 이후 〈가시고기〉,〈누가 누구?〉, <똥꿈〉,〈짬뽕〉, 〈흉가에 볕들어라〉,〈9년만의 여름〉등이 제작되었으며, 이 작품들은 지역의 일상과 사회적 맥락을 무대적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에서 예도가 높은 수준의 무대 형상화와 미학적 성과를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특히〈흉가에 볕들어라〉는 경남연극제 대상 및 전국연극제 금상을 수상하며, 예도가 지역적 한계를 넘어 전국적 경쟁력을 갖춘 극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작품이다.〈폐왕성〉(2005)은 거제의 실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창작극으로서 지역 서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어서〈거제도〉(2008), 〈바람이 멈춘 마을〉(2009),〈주.인.공〉(2010)으로 이어지는 지역서사 연작은 노동, 가족, 기억, 포로수용소 등 거제 고유의 역사적·사회문화적 맥락을 연극적 구조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지역연극의 미학적 성취를 한층 확장했다. <거제도〉는 경남연극제 대상과 전국연극제 금상을 수상하며, 지역극단의 창작물이 전국적 담론으로 발화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기록된다. 2012년〈선녀씨 이야기〉는 예도의 미학적 성취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가족 서사, 지역의 기억, 노동의 윤리 등을 정제된 무대 언어로 구성한 이 작품은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역 서사가 보편적 서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이후 예도는 지역소재에 머물지 않고 사회 구조적 문제로 관심 범위를 확대했다. 〈사랑은 룸바를 타고〉,〈갯골의 여자들〉,〈그 사람이 있었습니다〉,〈어쩌다 보니〉,〈피고인 봉희철〉 등은 젠더, 폭력, 가족, 공동체, 교육 등 동시대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를 연극적으로 재해석하며 극단의 창작 지평을 넓혔다. 2018년 〈나르는 원더우먼〉과 2019년 〈꽃을 피게 하는 것은〉은 예도의 30년 활동이 도달한 정점으로 평가된다. 두 작품이 2년 연속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과 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상 실적을 넘어 지역극단이 생산한 작품이 전국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서사 구조와 미학적 완성도를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팬데믹 시기에도 예도는 〈아비〉,〈크라켄을 만난다면〉,〈꼬깔모자의 마음〉,〈국물 있사옵니다〉등을 선보이며 지역극단으로서 창작 환경의 지속성을 유지해 왔다. 최근에는 〈언니와 나〉(경남연극제 은상), 주크박스 뮤지컬 〈당신이 좋아〉 등을 통해 형식적 확장을 시도하며 여전히 지역 연극 생태의 중심적 존재로 기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극단 예도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지역 서사 발굴, 창작 역량 강화, 장르 실험, 전국 단위 경쟁력 확보 등을 통해 거제연극을 견인해 온 셈이다.
◇ 코미디와 즉흥성,〈어쩌다 보니〉의 텍스트 구조와 알레고리 구축 방식
대체로 역사 코미디의 형식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드라마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탈춤적·판소리적 풍자와 해학'에 현대 즉흥극(improvisation)의 장치를 더하고, 여기에 '관객의 참여'를 서사로 끌어들인 구조다. 이러한 방향성은 한국 사극 코미디의 특징으로 이어지는데,〈어쩌다 보니〉에서는 관객-참여성이 극대화된다. 특히 지역극단이 이러한 형식을 개발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즉흥성, 관객 개입, 코믹, 역사 비틀기 등이 결합된 방식은 원래 마당놀이의 전통을 기반으로 구조화되지만, 이를 극장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확장된 레퍼토리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는 조선 후기의 관아·현령·형방·백정·주모·청나라 사신이라는 역사적 프레임을 우스꽝스럽게 형상화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형식은 현대 정치·사회 구조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무능과 위선, 사리사욕, 권력의 무책임과 민중의 희생을 코미디 형식으로 조직하고 구조화한 것은 특정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는 형식적 측면에서 전통 마당놀이(관객 참여) + 현대 즉흥극 + 사극 코미디 + 정치적 알레고리라는 네 가지 요소가 결합된 복합 장르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어쩌다 보니〉는 무조건적인 관객참여형 웃음극으로만 보기보다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국 역사 장르 코미디의 계보 속에서 관객참여 형식을 폭넓게 확장한 작품이라는 점에 더 큰 특징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단 예도의〈어쩌다 보니 제작 과정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연출의 말처럼,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대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돌파하려는 치열한 생존 본능이 작품 바닥에 깔려 있다. 이삼우 연출이"사회문제까지 가면 어렵고 그냥 친구 이야기로 풀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며 시작된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역사극 서사를 통해 이 시대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코미디극으로 전환되었다.
〈어쩌다 보니〉가 구축한 캐릭터들은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거대한 알레고리(Allegory)의 전형들이다. 고을의 수령 칠홍은 "누가 봐도 억울하게 생긴 놈을 잡아들여라"라고 명령하며 자신의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는 권력의 무능과 비겁함을 상징한다. 이방 만갑은 위기 상황에서도 "배 한 척만 띄워 주게"라며 필리핀으로의 도피와 재산 은닉을 꿈꾸는 기회주의적 자본가의 모순을 대변한다. 선비 시형은 "선비는 은인자중하고 멸사봉공하며"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죽음 앞에서는 도망치는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의 장점은, 무대 위에서 칠홍·만갑·시형이 서로를 배신하고 속이는 와중에도 기묘한 앙상블을 만들어내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는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소시민의 아픔과 세상의 부조리함"을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찌질하고 비겁한 우리네 일상의 풍경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은 저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 속에서 2025년 현재의 병리적 인간 군상을 발견함과 동시에 "잠시라도 웃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연출 의도와 맞닿게 된다.
◇ 말의 정치성, 〈어쩌다보니〉가 드러내는 발화의 권력 구조
<어쩌다보니〉의 희곡은 전통 사극 코미디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역사 비틀기나 캐릭터 희화화에 머물지 않고, 장면의 배열과 시간의 구조,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행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기'라는 정치적 질문을 내재하고 있는 희곡텍스트이다. 희곡은 서사를 주도하는 인물보다, 즉흥적 상황 속에 놓인 집단과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을 회피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설정은 전쟁의 역사적 실패를 환기해 현시대의 사회적 정치상황을 지각하게 하는데 있다. 이 작품은 사건이 인물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인물들의 지속적인 회피와 책임 떠넘기기가 사건을 지연시키고, 그 지연이 결국 공동체(전쟁과 역사)의 파국을 초래한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역사가 그렇다는 점에서 공감가는 방식이다. 대부분 전통 사극이 특정인물의 결단(왕)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한 것과 다른 방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쩌다 보니> 희곡의 시공간은 병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장면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칠홍이 희생자를 찾아내려는 장면도 실제로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책임을 미루는 시간이고, 만갑이 이익을 계산하는 장면 역시 선택의 지연을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며, 시형의 대사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언어가 아니라 공허한 이상론을 반복함으로써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코미디는 이러한 미루기의 반복에서 발생한다. 희곡에서 공간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관아는 권력의 중심이지만, 희곡 속 관아는 그 기능을 상실한 인물이다. 전통 사극에서는 질서·권위·중심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매우 이례적이다. 이 작품에서 관아는 권력이 행사되는 곳이 아니라, 권력이 지속적으로 비워져 있는 장소로 권력은 부재해 있는 공간이 된다. 희곡은 이같은 공간적 결핍을 통해 권력의 부재가 어떻게 공동체적 재난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재난을 누구의 몸이 먼저 감당하게 되는지를 드러낸다. 인물 구성에서도 희곡은 단순한 캐릭터 유형화를 넘어서 '말과 행위의 불일치'됨을 웃음코드를 입혀 구조적으로 반복한다. 칠홍의 경우 명령권을 가진 자지만 어떤 명령도 실제로 실행하지 못하며, 그의 언설은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방해하는 언어로 작동한다. 만갑은 어떤 결단도 내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계산을 수행하는데, 그 계산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최대한 덜 손해 보는 상태'를 찾기 위한 단선적 알고리즘으로 기능한다. 시형은 도덕적 언어를 반복하지만, 그 말은 도덕적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무능·기회주의·위선은 인물들의 심리적 특성이라기보다 언어 사용 방식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이러한 언어적 정체 상태 사이를 뚫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주모이다. 주모의 언어는 도덕적 선포도, 교훈적 대사도 아니다. 주모는 상황을 진단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으며, 다만 현실의 모순을 '말해버리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주모의 발화는 텍스트의 여러 층위의 알레고리 중에서도 현재적인 층위를 담당한다. 주모의 말은 상황을 정리하거나 통찰을 제시보다 인물들의 비겁함을 드러내고, 관객이 이미 체감한 현실의 냉혹함을 단어 하나하나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주모의 언어요소가 희곡의 후반부에서 서사적 전환점으로 기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희곡이 다른 역사 코미디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지점은 마지막 선언서 장면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관객의 음성을 통해 결말을 완성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희곡 구조에서 가장 파격적인 부분이다. 선언은 대사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발화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는 정치적 실천이며, 관객의 음성은 희곡이 만들어낸 세계를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그 세계를 체험하는 행위자가 된다. 이 장면에서 텍스트는 더 이상 서사적 구조물로 기능되는 것이 아닌 관객의 참여를 통해 현실의 장면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어쩌다보니>는 관객과의 참여를 통해 웃음의 확장성이 생산적으로 확대되는 설정들이다. 희곡은 관객의 존재를 텍스트가 아닌 현장성(performativity)에서 의미가 발생하는 작품이라 할수 있다.〈어쩌다보니〉의 장면들은 에피소드적 구성이 아니라, 권력과 역사의 실패와 민중정신의 회복이라는 구조로 이어진다. 첫장면인 관아의 소집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설정의 코미디적 도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작품 전체의 언어적·정치적 역사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환기하는 장면이다. 칠홍이 백성들을 모아놓고 "세 명의 자발적 희생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장면에서 칠홍의 대사는 민중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의 기능을 상실하고, 권력의 무능과 비겁함을 은폐하는 수사 장치로 변질된다. 그의 행동과 동작은 과장되지만 불안정한 명령처럼 들리는 것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역사적 구조를 드러낸다. 이와 같은 '언어의 정치성'은 이어지는 만갑의 장면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계산하듯 손가락을 튕기고, 말을 하다가도 문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채 "그러니까… 지금은…"이라고 흐린다. 이 발화의 파편성은 신자유주의적 생존술을 체현하는 인물의 기호적 구조를 구축하며, 당장의 손해를 피하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그의 대사(말)은 정보 전달보다 역사적 회피를, 행동은 역사적 사건의 해결책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의 기술을 전락된다. 이어 시형이 등장하면서 대사를 통한 또 다른 층위를 드러낸다. 시형은 고결한 말투로 도덕성을 설파하지만, 그의 말은 현실을 움직이거나 누구도 구제하지 못한다. 시형의 언어는 지식인의 윤리성이라는 규범적 장치를 수행하지만, 그 자체가 현실과 무관한 공허한 퍼포먼스임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 위에서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말'로 연출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말은 길고 고결하지만 행동은 누구보다 먼저 도망치는 인물이다. 결국 그의 언어는 권력 비판이 아니라 자기보호를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점이 희극적 장치를 통해 부각된다. 이러한 "말하는 권력자들"의 구조와 대조되는 장면이 바로 관객참여이다. 관객이 무대로 올라와 날것의 말을 하는 순간 역사는 재현이 아닌 현실로 전환된다. 마치 그 시간에 이성적인 판단을 관객이개입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이렇게 희곡은 언어의 위계와 권력을 뒤집는다.
관객의 참여는 곧 시민적 발화의 현실성을 상징하며, 훈련되지 않은 언어가 무대 위에서 역설적으로 설득의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극중장면이 '민중의 주체'가 공연의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인데, 역사의 실패를 똑똑히 바라보고 다시 하지 말자는 교훈처럼 느껴지기도한다. 배우들은 관객의 실수를 적극적으로 받아치며 즉흥적 장면을 생산화 하고 객석은 웃음이 터진다. 〈어쩌다보니〉는 이 러한 장면을 연속적으로 진행시켜 배우가 아니라 관객은 역사와 시민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끔한다. 이러한 코미디적 소동이 일어나는 시간에 나라가 등장하는데, 관객과 상대 등장인물에게 묻는 순간, 코미디적 장면들은 웃음으로 소비된 것이 아닌 역사를 환기하는 정치적 알레고리였음이 드러난다. 관객은 방금 전까지 자신이 웃고 있던 세계가 사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반사하는 거울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 장면에서 연극은 웃음의 시간에서 사유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 이작품의 핵심이다. 주모의 언어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현실 언어의 질감을 재현한다. 특히 관객참여를 통해 이미 '백성의 자리'를 경험한 관객들은 주모의 발화를 현실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의 정치적 발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주모의 대사는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적, 역사적 오류들과 맞닿아 있는 날것의 언어로 전환되어 강력한 현실 인식 장치로 기능한다. 선언서 장면에 이르면, 연극은 권력을 완전히 관객에게 넘긴다. 선언서를 읽는 자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의 떨림·어색함·비전문성은 텍스트의 의미를 선명하게 수행한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모멸감, 그 고통은 우리가 안고 죽겠다"는 문장은 배우의 훈련된 발성이 아니라, 시민의 떨리는 음성에 의해 가장 실제적인 사건으로 변환된다. 이 순간에 연극은 재현(representation)의 차원을 넘어 수행(performance)의 공간으로 이동하며, 공연은 극적 서사가 아니라 시민적 발화로 완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어쩌다보니〉의 장면들은 독립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권력 언어의 붕괴 → 관객 참여와 발화 → 민중 언어의 복권 → 시민적 수행으로서의 결말이라는 하나의 연속적 흐름으로 구조화된다.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이러한 구조에 진지해 지면서도 오류의 역사를 감각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에서 웃음은 목적이 아니라역사를 직시하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풍자극의 현재성: '지금-여기'의 역사 감각을 호출하는 연극
극단 예도의 〈어쩌다보니〉는 사극 코미디라는 형식을 가져와 장르 혼성이나 웃음의 재현을 넘어 풍자극의 역사적 계보를 수행하는 연극(performance theatre)이라는 점이 특징이라 할수 있다. 전통 탈춤의 양반 풍자, 판소리 광대의 언어 전복, 1980~90년대 마당극의 민중 주체 형성, 그리고 동시대 참여형 연극의 현장성을 종합적으로 변형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웃음은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권력 구조를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장치(epistemic device)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앞선 비평구조를 설명하면서 몇차례 밝혔지만〈어쩌다보니〉는 텍스트 수준에서 이미 구조적 알레고리로 작동한다. 칠홍·만갑·시형은 개인이 아니라 권력·자본·지식인의 서사적 기표(signifier)로 인물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반복적 대사와 느긋하고 지연된 행동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일종의 기호적 패턴으로 보인다. 이 인물들의 "행동하지 못하는 언어"와 "말하지 못하는 행동"은, 조선 후기 관아의 무능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발화 구조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메타-기호적 장치로 기능되고 있다.
텍스트는 특정 역사적 시점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시점을 통해 현재의 정치적 장면을 은유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는점이 차이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적 의미는 텍스트 그 자체보다, 텍스트가 공연(performance)이라는 현장에서 어떻게 해체·확장되는가에 있을 것이다.〈어쩌다보니〉는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spectator)가 아니라, 서사적 행위자(agent)로 전환시키는 관객참여 구조를 전면화함으로써, 전통적 풍자극이 수행하지 못했던 주체의 재구성을 수하는 작품이다. 관객은 대사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몸짓이 어색하며, 발성은 비전문적인데. 연극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관객의 비전문적 발화는 단순한 즉흥이 아니라 시민적 발화(civic utterance)의 수행성(performativity)이며, 극장을 하나의 공적 공간(public sphere)으로 전환시키는 연극적기업이면서도 연극을 생산하는 극장이 정치적인 사회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정치극(Brecht)이나 고전적 풍자극에서는 취약한 지점으로 텍스트를 넘어 관객의 신체와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역사-정치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어 웃음화 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어쩌다보니〉의 의미는 웃음의 발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통해 관객의 사고와 행동, 참여로 확장해가 정치적 행위로 이동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예도는 사극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징을 빌려, 무대는 공연장이 아니라, 역사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 말과 행동이 다시 관계 맺는 민주적 공간으로 재현된다는 점이 그렇다. 이러한 특징으로 〈어쩌다보니〉는 풍자극의 역사성과 수행성, 지역극단의 공동체적 실천, 민중의 발화 구조, 참여형 연극의 정치성을 하나의 연극적 장(場)으로에 작정하고 웃기려고 개발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