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품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2026-01-0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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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스틸컷

새해가 되면 다시 찾아보는 영화들이 있다. 그중 감정과 사고의 폭을 가장 넓히는 작품을 고르라면, 코엔 형제가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뽑는다. 표면적으로는 피와 총성이 난무하는 서부극이자 마약과 돈이 얽힌 타락한 범죄극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폭력적인 세상에서 죄와 윤리,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부조리극이다.

베트남 참전 용사이자 사냥꾼인 모스(조쉬 브롤린)는 마약 거래가 잘못된 현장을 목격한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돈이 가득 든 서류 가방 하나만 남아 있다. 그는 돈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냉혹한 킬러인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와 숨바꼭질 같은 추격전을 벌인다. 그리고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많은 영화가 극적 효과나 주제 의식을 위해 폭력을 활용했지만, 이 영화처럼 오랜 여운을 남긴 작품은 드물다. 그리고 그 폭력의 아우라는 영화를 볼 때마다 숙연한 공포를 선사한다.

공포의 근원은 인식의 불가능성에 있다. 우연히 마주친 위험이 우리의 모든 걸 파괴하고자 엄습할 때, 그 까닭을 도저히 찾을 수 없고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면 그 공포는 극에 달한다. 앎의 의지마저 앗아가는 잔혹한 운명의 매정함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디 하소연을 할 것인가. 이에 작품 속 실질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안톤 쉬거는 답한다.

"내가 당신 인생에 끼어들었을 때 이미 당신 인생은 끝난 셈이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어. 지금은 끝이야. 당신은 꼭 이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래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길은 없어. 이 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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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죽음이라는 섬뜩한 폭력 앞에서 우리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만약 불시에 나타난 악마가 '동전 던지기'의 결과로 죽음의 여부를 판단한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마침내 숨통이 끊기는 순간이라도 온다면? 아마 겨우 남길 수 있는 건, 안간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는 발버둥의 흔적이 전부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답답한 의문들이 남겠지만, 원작 소설을 읽으면 어느 정도 해갈이 된다. 소설 속에만 서술된 모스의 대사를 눈여겨보자.

"네가 그곳에 가면서 아무것도 짊어지고 가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이 요점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너의 생각. 아니 누구의 생각이든.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없어. 내가 말하려는 게 이거야. 너의 발자국은 영원히 남아. 그걸 없앨 수는 없지. 단 하나도."

우리는 보통 일이 꼬일 때면, 새로운 다짐으로 스스로를 리셋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림을 잘못 그려 넣은 스케치북의 페이지를 찢어 버리고, 새로운 캔버스에 제대로 그림을 다시 그려보자는 마음처럼. 그런 우리에게 이 작품은 차갑고 혹독한 말을 던진다. 지난 시간 속에 남겨둔 너의 오물들을, 너는 소각해 버린 게 아니라 그냥 망각한 것뿐이라고. 그것도 잠시만.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애써 받아들이는 체념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관능의 음악에도 사로잡히지 못하고 욕망에 병들지도 못한 채, 그렇게 늙어가는 지질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사라져 갈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피할 수 없이.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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