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덕 사회2부 기자
경북 구미가 아시아 최대 규모인 1.3GW급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유치를 선언하면서 지역사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시내 곳곳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상륙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특히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NVIDIA)가 구미에 직접 투자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시민들이 던지는 "정말 엔비디아가 구미에 올까?"라는 질문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구미 경제의 재도약에 대한 기대가 배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엔비디아가 직접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거나 입주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을 뜯어보면 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시설과 달리 엔비디아의 H100 같은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가 필수적인 '두뇌 기지'이기 때문이다.
1단계 인프라 구축비 4조5천억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에 고가의 GPU 장비가 채워지면 실질 투자 규모는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엔비디아의 이름이 없더라도, 구미는 이미 AI 기술의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일본이나 싱가포르를 제치고 한국, 그중에서도 구미를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시대의 진짜 자원은 '전력'과 '물', 그리고 '부지'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삼키는 '전기 먹는 하마'지만, 경북은 전력 자립도 228.1%로 전국 1위를 기록하며 안정적 공급 능력을 입증했다. 구미산단은 2026년 500MW급 LNG 발전소가 가동되면 전력 자급률이 38%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서버 열을 식혀줄 낙동강의 풍부한 공업용수 역시 글로벌 기업들이 구미를 아시아 거점으로 낙점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다. 또 5산단은 부지 확보와 공사 속도 면에서도 유리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구미의 주력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SK실트론, LIG넥스원 등 이미 단단히 구축된 반도체·방위산업 인프라에 AI 컴퓨팅 파워가 더해지면, 구미는 단순한 제조 도시를 넘어 '제조업 AX(AI 전환)'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구미가 아시아 데이터 허브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문학적인 사업비 조달의 안정성과 글로벌 기업들의 실제 입주 여부를 놓고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1.3GW라는 전례 없는 규모의 프로젝트인 만큼, 이 청사진이 현실화되느냐는 경북도와 구미시, 그리고 컨소시엄이 보여줄 실행력에 달려 있다. 관계 기관이 '원 팀'으로 움직여 인허가 절차를 단축하고, 한전과의 계통 확충 협의를 얼마나 신속히 해내느냐가 성패를 가를 열쇠다.
내년 1분기 첫 삽이 예정된 이번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른다면, 구미는 지방 소멸 시대에 산업 혁신으로 지역 재생을 이뤄낸 상징적 모델이 될 것이다. 엔비디아가 직접 오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구미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AI 인프라의 중심지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구미라는 튼튼한 '하드웨어' 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운영체제(OS)'를 설치하는 일이다. 과거 근육질 제조업으로 한국 경제를 떠받쳤던 구미가, 이제는 AI라는 뇌를 장착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도시로 업그레이드될 때다. 산업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하나로 결합하는, 진짜 변곡점이 구미에서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