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 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니?" 최정례의 시, '개천은 용의 홈타운' 앞부분과 뒷부분을 옮겨봤다. 혼자 읽기엔 너무 아까워서….
'개천은 용의 홈타운'은 익살맞다. 페이소스(pathos)도 풍긴다. '개천에서 용 난다'란 속담(俗談)을 '개천은 용의 고향'으로 승화시켰다. 시인은 '개천 용'이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신화(神話)의 영역으로 넘어갔음을 잘 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불공정한 현실을 절망한다. 하지만 미련은 남는다. 미련이 아니라 희망이다.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라고 믿고 싶다. 시인만 그럴까. 이 땅의 청년들, 그들의 부모들도 같은 심정이다.
현실은 이런 믿음을 희석(稀釋)시킨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은 '계층(階層) 상승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상 인구 가운데 본인 세대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을 낮게 생각하는 비중은 57.7%로 조사됐다.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에는 '낮다'가 54.1%로 '높다'(29.9%)보다 훨씬 많았다.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는 45.2%가 자식 세대 계층 상승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 비율은 '중층'에서는 33.7%, '하층'에서는 21.6%로 낮아진다.
높고 높기만 하던 '계층 이동 사다리'는 아예 무너졌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은 '소득 불평등(不平等)'을 근본 이유로 꼽고 있다. 부모 재산의 차이가 자녀의 교육 수준 격차를 낳는다. 이는 '능력의 차이'라는 환상(幻像)을 만들어 '부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사는 청년에겐 '희망 고문'이었다. 청년들은 입시·취업 전쟁을 겪고, '조국 사태', 집값 폭등, 고위직의 부도덕·비리를 보면서 현실을 절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