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가사가 한 편의 시보다 더 속깊은 울림을 전할 때가 있다. 선율을 머금은 대중가요 노랫말의 서정적 위력이다. 짧은 형식이지만 명곡이 지닌 가사의 기승전 결 구조는 한 권의 소설적 서사성을 지닌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정서와 서민의 언어를 가장 곡진하게 표현한 문화현상이다.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품고 한국인의 감성에 부응한다.
일상적 노랫말 속에는 각별한 문학적 비유와 상징성이 담겨 있다. 당대의 풍경과 내면이 응축되어 있다. 대중가요에 깃은 문학의 향기는 가슴에 와닿는 역사의 숨결이다. 그 문학적 감수성을 조명하며 그 미학적 가치를 탐색해본다. 그곳에 한국인의 진솔한 삶이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대중가요 속의 문학 읽기를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대중가요는 또 하나의 문학이다. <편집자 주>
◆ 절망 속에 피워올린 '희망가'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는 온전한 창작곡이 아니다. 번안곡이다. 1920년대 바다 건너 일본을 거쳐 들어온 서양음악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국적 감성을 지닌 노랫말을 붙였다. 그렇게 유성기 음반으로 나왔다. 최초의 대중가요인 셈이다. 처음에는 민요가수가 무반주 병창으로 불렀다. 제목도 갖가지였다. '탕자 자탄가' '탕자 경계가' 또는 가사의 첫 부분을 인용한 '이 풍진 세월' '이 풍진 세상' 등으로 통용되었다.
현실 도피성 가사에다 당시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실망가' '절망가'로 부르기도 했다. '희망가'라는 제목은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가수로 꼽히는 채규엽이 취입한 노래를 통해 등장했다. 애초에 이 노래는 3.1 운동의 좌절로 실의에 빠진 민중의 허탈감을 달래는 묘약이었다. 널리 유행한 까닭이기도 하다. 참담한 시절일수록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가'는 제목처럼 희망적이지 않다. 우울하고 비탄적이다.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하듯 사뭇 절망적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야 했다. 다분히 역설적이다.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희망이 충족될까'라는 반문이 그렇다. 곰곰한 성찰의 결과 또한 일장춘몽이다. 그렇다고 세상만사에 초연할 수도 없는 지난한 현실이다. 희망이 절실하다는 내면의 절규이다.
1930년대 조선일보 연재 작품인 채만식의 소설 '탁류'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과 농토를 잃고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주변 인물의 모습을 통해 어두운 세태를 그렸다. '탁류'(濁流)는 해맑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전제로 한다. 어지러운 계절일수록 따뜻한 온기와 희망의 물결이 그리웠을 것이다. 희망이야말로 시대의 질곡을 견녀내는 힘이었다.
3박자 5음계의 '절망가' 선율에 실은 가사는 조선의 서러운 현실을 웅변했다. 망국민의 탄식과 아픔이 흠뻑 배어있다. 그러나 '절망가'는 '희망가'를 잉태했다. 풍진 세월일수록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3.1운동이 무산되며 허무의 늪에 침잠한 민중에게 '희망가'는 재생의 에너지가 되었다. 시대의 거울이자 민중의 비타민이었던 대중가요의 숨은 위력이다.
호남 출신 저항시인 문병란은 동명의 시 '희망가'에서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고 했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이라고 했다. '희망가'는 세기말의 IMF 외환위기로 탈진한 국민에게 재기의 배터리가 되었다. '희망가'라는 노래와 시는 시대적인 허기에 지친 우리 겨레의 유모(乳母)였는지도 모른다.
민족시인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오랜 암흑의 터널을 지나 기어이 광복을 맞이했다. 지금도 그렇다. 세상살이는 여전히 풍진이고 '희망가'에 목마르다. 한국인의 100년 애창곡 '희망가'는 그렇게 21C에 선연하게 부활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