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모의 모두를 위한 미술사]예술의 이유, 불가능을 현실로 성취하는 힘

입력 2026-01-01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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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레스키의 도전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이름은 오늘날 위대한 건축가로 기억되지만, 그의 출발은 실패였다. 그는 원래 조각가였다. 그러나 1401년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제작 공모에서 기베르티에게 패배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첫 야망은 좌절된다. 이 실패는 단순한 경력상의 굴곡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였다. 브루넬레스키는 패배 이후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했고, 고대 건축의 폐허를 측량하고 연구하며 자신만의 사유를 축적해 나갔다.

그가 다시 피렌체의 역사 무대에 등장했을 때, 도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피렌체 대성당, 즉 두오모의 돔이 수십 년째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팔각형 드럼 위에 돔을 얹는 일은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푸집을 설치할 수도 없었고, 기존의 고딕 방식으로는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많은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이 문제 앞에서 고개를 저었고, 돔은 이론적으로는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구조로 여겨졌다.

브루넬레스키 동상
브루넬레스키 동상

브루넬레스키는 이 불가능 앞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설계도를 공개하지 않았고,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는 방식도 난해했다. 동시대인들은 그를 괴짜로 여겼고, 그의 아이디어는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중 껍질 구조, 헤링본 패턴의 벽돌 쌓기, 내부에서 스스로 지탱하는 구조 원리는 기존 건축 사고를 완전히 전복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1436년 완공된 피렌체 두오모의 돔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 기술과 결합할 때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가 되었다. 그것은 고대 로마 이후 서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돔이었고, 거푸집 없이 세워진 최초의 구조물이었으며, 중세와 르네상스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였다.

브루넬레스키의 진정한 혁신은 형태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그는 예술가이자 기술자였고,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수학, 기하학, 공학, 재료에 대한 이해를 통합했고, 추상적 상상을 실제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유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 등장하게 만드는 힘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한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탄생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의 집결이자 기술의 집결이며, 인간 지성이 특정 순간에 도달한 총체적 성취였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될 리 없다"는 말을 "반드시 되게 하겠다"는 질문으로 바꾼 상상력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술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묻게 된다. 예술은 쓸모없어 보일지 모른다. 당장의 효율이나 실용적 목적만 놓고 보면, 예술은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 사회의 결정적 전환점마다 예술적 상상력은 늘 중심에 있었다. 불가능을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끌어오는 집요한 추진력과 실천력,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사회에 제공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지금도 피렌체의 하늘 아래 서 있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이다. 예술은 현실을 장식하는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를 다시 설정하는 인간 정신의 가장 강력한 도구다.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장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