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부터 산재·임금체불까지… 이주민들의 '막막한 삶'을 풀어 주는 곳
지난달 14일 낮 12시 30분,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작은 교회에 베트남어 찬송이 울려 퍼졌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베트남어로 낭독됐고, 설교는 한국어로 진행된 뒤 자원봉사 통역을 거쳐 다시 베트남어로 전달됐다. 타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이주민들에게 이날 주일 예배는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예배가 끝나자 교회는 곧바로 '상담 창구'로 변했다. 신도들은 목사 앞에 줄을 서 취업과 의료, 자녀 교육, 비자 문제까지 삶의 고민을 털어놨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직장 내 성희롱 등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겪는 이주민들의 고충은 이곳으로 모여든다.
베트남인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밀집한 비산동 북부정류장·팔달시장 일대에서 이주민선교센터는 지난 22년간 이들의 '묵묵한 버팀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 월급 135만원에서 남은 돈 7만원으로 한 달 버텨
예배에 참석한 빤뚜이(41)·푸엉(33) 씨 부부에게 이 선교센터는 말 그대로 '삶의 은신처'다. 푸엉 씨는 대구에서 태어난 딸을 생후 8개월 만에 베트남 친정으로 보내고, 3공단의 안경공장에서 9년간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첫 월급은 135만원. 이 가운데 100만원을 고향의 노부모에게 송금하고 월세 25만원을 냈다.
거기에다 수도·전기·도시가스 요금까지 3만원을 납부하고 남은 돈 7만원으로 한 달을 버텼다. 남편 빤뚜이 씨는 염색공단과 건설 현장을 오가며 17년을 일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철근 파편이 튀는 사고로 오른쪽 눈 아래 신경이 끊어지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푸엉 씨는 "남편이 산재 사고를 당해 막막했을 때 이주민선교센터에서 치료와 보상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둘째를 임신한 지 5개월째라는 그는 "몸도 마음도 지칠 때 교회를 찾는다"며 "믿음을 가르쳐주고 생활 문제까지 함께 도와주니, 타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버팀목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조만간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베트남으로 영구 귀국할 예정이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2003년 11월 11일,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설립 취지는 분명했다. 타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복음은 물론, 노동·체류 과정에서 침해되기 쉬운 권리와 보호의 손길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센터는 이주민 상담과 신앙 공동체 역할을 병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2013년 12월, 사역 12주년을 맞아 베트남인 교회를 별도로 세우면서 변화는 본격화됐다. 예배뿐 아니라 상담·교육·지원 기능이 강화되며, 이주민들의 삶을 떠받치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 22년간 8천800명 만나…이주민의 곁을 지키는 '안전망'
베트남인 교회를 이끄는 박순종(61) 목사는 이주민들 사이에서 '친절한 삼촌'으로 통한다. 그는 "1년에 약 400명의 이주민을 만난다. 22년을 계산해보니 8천800명쯤 된다"며 "처음 교회를 찾았던 분들은 이주노동자 1세대였고, 이제는 그분들의 아들·딸이 다시 이곳으로 온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현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박 목사는 지난 22년간 대구 전역의 산업 현장을 누비며 임금체불 상담부터 산업재해 병원 동행, 체류 자격 문제 지원, 장례 절차까지 맡아왔다. 그는 "가장 아픈 부분은 산업재해"라며 "산재를 당한 이주민들은 교회에서 기숙하며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주민과의 소통을 돕는 통역 자원봉사자 인건비 지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또 "결혼이주여성은 가족 초청이 가능하지만,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치료나 사망 사고가 발생해야 가족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구조"라며 "이런 현실은 20여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최소한 산업재해 문제만큼은 제도적으로 신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대구의료원이 이주민 진료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현장에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체불·산재·장례까지…이주민이 기대는 마지막 문
이주민선교센터는 달성군 논공공단 안에 있는 평화교회에서도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주일 예배에 이어 평일에는 기도 상담이 열리고, 어린이 성경공부와 노동 상담·한글 교실· 진료 지원·변호사 상담까지 쉼 없이 돌아간다. 고경수 목사와 박순종 목사를 중심으로
엄원섭 목사, 김재동 선교사 등 사역자들과 10여 명의 통역·자원봉사자가 현장을 지킨다. 이들은 제도 밖에서 흔들리는 이주민들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다.
이주민선교센터의 살림은 화려하지 않다. 대구시에서 매달 지원받는 활동비 80만원이 전부다. 정부 예산도, 대규모 후원도 없다. 하지만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체불 임금 상담 창구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언덕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함께 견뎌주는 장례 지원 공동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