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만나는 약선(藥膳)] 도라지정과

입력 2026-01-0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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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정과
도라지정과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처얼처얼처얼 다 넘는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꽃 중에 도라지꽃을 빼놓을 수 없다. 야산이나 들판, 울타리 밖이나 텃밭에 흰빛이나 보랏빛으로 핀 도라지꽃을 보노라면 반가움과 함께 애틋함이 번진다. 어린 날에 풍선 모양으로 부푼 꽃망울을 보면 손바닥을 마주쳐 "퐁!" 터트렸다. 때론 공기를 가득 담은 도라지 풍선을 하늘로 띄워보려고 발뒤꿈치를 들곤 했다.

시골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밭 한편에 자리한 도라지가 먼저 반긴다. 대개가 보랏빛 꽃인데 그중에 다문다문 백도라지 꽃이 섞여 피었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는 황순원의 '소나기'가 스쳐 가는 것은 그 꽃묶음에 도라지가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이다. 왠지 도라지는 슬픔을 예지하는 꽃이기도 하다.

얼굴에 참깨 들깨 쏟아져 / 주근깨 자욱했는데 / 그래도 눈썹 좋고 눈동자 좋아 / 산들바람 일었는데 / 물에 떨어진 그림자 하구선 / 천하절색이었는데 / 일제 말기 아주까리 열매 따다 바치다가 / 머리에 히노마루 띠 매고 / 정신대 되어 떠났다 / 비행기 꼬랑지 만드는 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 미제부락 애국부인단 여편네가 데려갔다 / 일장기 날리며 갔다 / 만순이네 집에는 / 허허 면장이 보낸 청주 한 병과 / 쌀 배급표 한 장이 왔다 / 허허 이 무슨 팔자 고치는 판인가 / 그러나 해방되어 다 돌아와도 / 만순이 하나 소식 없다 / 백도라지 꽃 피는데 / 쓰르라미 우는데- 고은 '만순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백도라지 꽃은 말해준다. 우리 민족은 순수한 백도라지 꽃으로, 한이 많아 멍이 든 보랏빛 꽃으로도 물들었다.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도라지는 순우리말에서 유래했다. 꽃이 옆으로 '돌려' 피어난다고 '돌아지 / 도라지'로 변화했을 거라는 음운상 추정을 한다. 한자어로 '길경(桔梗)'이라고 불리는데, 桔은 나무 목(木)과 길할 길(吉)이 합쳐진 글자이고, ​梗은 곧게 뻗은 줄기와 뿌리를 가리킨다.

주변에 도라지가 많다는 것은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다. 도라지는 예로부터 식용 및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식용으로는 새순을 데쳐 나물로 먹고, 뿌리를 캐어 귀한 반찬으로 상에 올렸다. 도라지는 명절이나 제사, 또는 생일상에 꼭 필요한 나물 반찬이었다. 약용으로는 특히 감기에 효능을 보인다. 도라지의 사포닌 성분은 호흡기 염증을 줄여 인후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도라지는 가래와 기침을 아래로 내려주고 그치게 하는 '강기거담지해(降氣去痰止咳)' 효능을 보이며 폐(肺)로 귀경한다.

병증을 미리 예방하여 몸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약선(藥膳)이라고 하는데, 도라지는 겨울철 약선으로 손꼽을 만하다. 도라지와 대추와 감초를 달여서 따뜻한 차로 마시면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도라지정과를 만들어 두면 어르신 간식이나 후식으로 그만이다.

도라지의 쓴맛을 빼기 위해 이틀 정도 물에 담가서 우리고, 연한 소금을 푼 물에 데쳐서 물을 따라낸 후에 정과를 만든다. 설탕으로 졸이면 건정과가 되고, 엿이나 꿀로 졸이면 진정과가 되는데, 도라지는 꿀과 궁합이 잘 맞는다. 꿀이 도라지의 부족한 칼로리를 보충해 주고 쓴맛을 완화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정서와 함께한 도라지로 건강한 겨울나기를 추천한다.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노정희 대구한의대 푸드케어약선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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