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역언론 살길은] 지역 이슈가 1면 톱…뉴스 품질 높이고 독자와 직접 소통 강화

입력 2025-11-26 14:17:08 수정 2025-11-26 2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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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언론사 생존 방식
포털·SNS 안 거치고 뉴스 전달…뉴스레터와 지역성으로 생존 방식 재설계
시민들 자발적 기부로 운영…후원은 받되 독립성은 유지

13일 오전 방문한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포스트. 모든 에디터들이 나와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맞았다. 존 비조냐노 편집국장(왼쪽 세 번째)은 열정적 브리핑을 통해 미국 언론 상황을 전했다. 구민수 기자
13일 오전 방문한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포스트. 모든 에디터들이 나와 한국에서 온 기자들을 맞았다. 존 비조냐노 편집국장(왼쪽 세 번째)은 열정적 브리핑을 통해 미국 언론 상황을 전했다. 구민수 기자

지역 언론이 위기다. 한국에서는 인력 감축과 광고 감소, 포털 의존 구조가 복합적으로 겹치며 뉴스룸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2일부터 24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탬파베이 현지에서 신문사 3곳, 방송사 2곳, 공영 라디오 방송국 2곳 등 언론사 7곳을 방문했다. 인력 축소, 재정 악화, 독자 감소라는 공통된 위기 속에서도 각 언론사는 지역과 독자를 잇는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위기의 구조화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뉴스룸의 급격한 축소다. 13일 오전 방문한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포스트는 한때 300명이 넘던 풀타임 기자가 현재 32명 수준이다. 팜비치포스트는 플로리다 팜비치카운티를 대표하는 종합 일간지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선센티널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플로리다 남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지 중 하나지만 기자는 45명 남짓이다. 편집은 시카고에서, 취재는 플로리다에서 이뤄지는 분리형 구조로 운영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22일 찾은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탬파베이 타임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퓰리처상을 14회 이상 수상한 미국 지역 언론의 '상징'이지만, 전성기 300명 규모였던 뉴스룸은 현재 100명 안팎으로 줄었다. 종이 신문 발행은 주 2회(수·일)로 줄였다.

마이클 반시클러 편집부국장은 "예전에는 지면 광고가 많았고 수익의 80%를 차지했으나 점점 온라인으로 변하면서 디지털 광고로 변했다. 그러나 디지털 광고로는 기존 지면 광고 수입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로컬 신문사의 사정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팜비치포스트 1면 기사. 플로리다에 찾아온 이상 한파에 이구아나가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로리다 지역은 최근 이상 기온이 반복되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이구아나가 자주 회자된다. 구민수 기자
이날 팜비치포스트 1면 기사. 플로리다에 찾아온 이상 한파에 이구아나가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로리다 지역은 최근 이상 기온이 반복되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이구아나가 자주 회자된다. 구민수 기자

◆뉴스레터와 로컬 이슈

미국 로컬 언론의 또 다른 특징은 '뉴스레터'다. 한국은 포털 의존도가 높지만 미국 지역 언론은 포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유통 채널은 이메일과 뉴스레터다. 선센티널은 16~17개의 뉴스레터를 운영한다. 주제별·관심사별·시간대별로 다양한 뉴스레터를 만들고, 기자들이 직접 큐레이션한다. 그레첸 데이브라이언트 편집국장은 "가장 좋은 점은 구글, 소셜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독자와 직접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탬파베이 지역 공영 라디오 방송국 중 하나인 WUSF의 모닝 뉴스레터는 더 인상적이었다. 아침 7시에 도착하는 짧고 간결한 형식으로 출시 2년 만에 6천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칼 리사안드렐로 디지털국장은 "뉴스레터가 독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로컬 언론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얼마나 '지역적이냐'였다. 한국 기자들이 방문한 날 팜비치포스트의 1면 톱은 플로리다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한파 소식이었다. 존 비조냐노 편집국장은 "우리는 뉴욕타임즈가 아니다"라며 "지역 소식과 지역 사회와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탬파베이 타임즈는 지역 비리와 환경오염 문제를 가장 강하게 다루는 매체였다. 건설 현장의 사망률을 데이터로 분석해 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 문제를 드러냈고, 플로리다 해역의 수질 문제와 매너티(바다소) 폐사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시민들의 지지

마지막으로 미국 로컬 언론의 중요한 특징은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가 있다는 점이다. 마이애미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 WLRN은 최근 연방 정부의 예산이 줄어들면서 청취자들의 기부금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탬파베이 타임즈는 자선가와 재단의 기부를 주요 재원으로 적극 끌어오고 있다.

공통된 원칙은 '후원은 받되 독립성은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편집자도 기부자의 요구를 기사에 반영하지 않으며, 기부자 역시 편집국에 개입하지 않는다. 광고·정치권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 지역 언론 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태계다.

결론적으로 플로리다에서 만난 언론사들은 모두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력은 줄고, 수익은 감소하고, 뉴스룸은 텅 비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지역을 깊게 이해하고, 독자와 직접 연결하며, 디지털로 생존하는 방식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한국 로컬 언론이 처한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미국의 대응 전략은 한국에 직접적 시사점을 던진다. 뉴스 품질을 높이고, 독자와 직접 연결하고, 지역성을 강화하는 것. 위기에 살아남는 로컬 저널리즘은 결국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는 언론이라는 사실이었다.

22일 오후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포인터 재단에서 만난 탬파베이 타임즈 기자들. 신문 발행을 줄이고 신문사끼리 협력을 강화한 탬파베이 타임즈 사례는 한국의 종합 일간지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구민수 기자
22일 오후 세인트피터스버그의 포인터 재단에서 만난 탬파베이 타임즈 기자들. 신문 발행을 줄이고 신문사끼리 협력을 강화한 탬파베이 타임즈 사례는 한국의 종합 일간지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구민수 기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 '로컬 저널리즘' 해외교육과정을 통해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