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시작된 반중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경찰·정부·언론·정치권이 합세해 이른바 '혐오 표현'을 규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중 시위를 두고 "저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그냥 깽판"이라고 발언하면서 시작된 드잡이다. 국무총리는 이와 같은 집회를 향해 엄단 조치를 예고했고 경찰은 "실효성 있는 대응을 위해 명확한 혐오 표현 제재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양부남 민주당 의원은 특정 국가·국민·인종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공연히 모욕한 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실제로는 처벌 조항이 없는 선언적 형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 의원 발의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훨씬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규제다.
여기에 경찰은 이상한 논리로 민주당을 지원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7월 20대 청년으로 이뤄진 단체 '자유대학'이 중국기에 시진핑 주석과 다이빙 주한중국대사 얼굴 등이 들어간 대형 현수막을 찢자 이들을 '외국사절 모욕' 혐의로 입건했다.
이에 "한국대학생진보연합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성조기를 찢었는데 왜 얘들은 입건 안 하냐"는 말이 나오자 경찰 측 답변은 기가 막혔다. 시진핑 주석이 아니라 다이빙 대사 사진을 찢었기에 불법이라는 논리였다. 형법상 '한국에 체재하는 외국 원수'나 '한국에 파견된 외국사절'에게 모욕을 가하거나 명예훼손을 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란다. 시진핑 주석 사진만 찢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을 향한 반중 정서가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혐오 감정'이 아니다.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진행한 202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과 보복(38.3%)와 역사 갈등(12.9%), 코로나19(44.2%), 군사적 위협(10.9%) 등 다양한 정치적·역사적 맥락에 뿌리를 둔다.
요즘 일어나는 일을 보니 1980년대 냉전 시대 관련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한 미국인이 "우리는 백악관 앞에서 '레이건은 죽일 놈'이라고 고함을 쳐도 경찰이 안 잡아 간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소련인은 "소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렘린궁 앞에서 '레이건은 죽일 놈'이라고 해도 안 잡혀 갑니다"라고 했다. 쉽게 말해 "소련에선 소련 지도자를 비판하면 잡혀 간다"는 말을 풍자한 농담이다.
이제껏 이 농담은 내게 우스갯소리로 들렸지만 지금은 좀 섬뜩하게 다가온다. 엄중했던 소련에서조차 다른 나라 정부나 지도자를 욕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 한국에선 타국이나 타국 지도자를 욕하면 잡아가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은 갖은 이유로 수백만명 목숨을 빼앗은 뒤 "1명의 죽음은 슬픔이지만 수백만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나라였다.
지금의 한국이 옛 소련 보다 나은 자유를 보장하는가 묻는다면 "당연하다"는 게 내 대답이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난 뒤 내게 다시 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당연하다"는 소리가 나올까 궁금하다. 지금 우리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는데 다들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당신 차례"란 말은 정말 구닥다리 표현이다. 이 표현이 쓰일 날이 없길 바란다.
박성준 프리드먼연구원 주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