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돈 있어야 보는 스포츠'라는 자조 섞인 현실을 직설적으로 전달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가 1승 1패로 맞선 가운데,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릴 플레이오프(PO) 3차전은 사실상 시리즈의 분수령이다.
한화는 류현진, 삼성은 아리엘 후라도를 선발로 내세우며 총력전에 나선다.
그러나 경기 하루 전인 20일, 온라인에서는 경기력보다 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팬이 아닌 '되팔이'들이 장악한 티켓 시장 이야기다.
기자는 이날 오후, 실제로 PO 3차전 입장권을 온라인으로 구매해 보기로 했다. 정가는 45,000원짜리 블루존을 기준으로 삼았다. 삼성 구단이 고지한 공식 티켓 가격이다.
그러나 예매처에서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고,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에 접속하자마자 수백 건의 매물이 쏟아졌다.
정가 4만5천 원 티켓, 거래가는 36만 원…"이 정도면 싼 거다"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블루존 2매 판매, 장당 180,000원'이라는 게시글이었다. 판매자에게 연락하자 "지금 이 가격도 싼 편이에요. 내일이면 더 오를 수 있어요"라는 답변이 곧장 돌아왔다.
기자는 총 360,000원을 송금한 뒤, 모바일 티켓(PIN 전송) 형식으로 입장권을 받았다. 좌석 번호와 바코드까지 명확히 기재된 정식 티켓이었다. 원래라면 90,000원이면 살 수 있는 티켓 2장이, 되팔이 손을 거쳐 4배 가격에 팔린 것이다.
판매자는 "매크로 돌려서 예매했다"며, "VIP, 스윗박스, 테이블석 다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플랫폼에 등록된 다른 매물들을 살펴본 결과, VIP석, 중앙테이블석, 스윗박스석은 모두 정가의 3~5배 가격으로 등록돼 있었고, 10매 이상을 보유한 판매자도 다수 확인됐다.
예를 들어
스윗박스석은 정가 90,000원인데, 거래 플랫폼에서는 299,000원~340,000원,
중앙 테이블석은 정가 75,000원인데, 일부 매물은 399,000원~449,900원,
블루존은 45,000원인데도 180,000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25,000원짜리 외야석마저 120,000원에 올라온 상황이었다.
삼성 팬도 밀려났다…"클릭 한 번 늦었을 뿐인데"
가장 큰 피해자는 티켓을 정가로 예매하고 싶었던 일반 팬들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삼성 팬 이재훈(31) 씨는 "홈경기라서 당연히 직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예매는 실패했고, 암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더라"며 "응원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돈이 실력인 시대 같다"고 씁쓸해했다.
팬들의 예매 실패는 단순한 운의 문제가 아니다. 암표상은 매크로 프로그램 등 자동화 도구로 예매 시스템을 장악하고, 일반 팬은 대기열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이후 해당 티켓은 플랫폼에 3~4배 가격으로 등장해 되팔이의 수익 수단이 된다.
한화 팬 이모(28) 씨는 "예매에 실패한 직후 같은 좌석이 거래 플랫폼에 올라오는 걸 보고 허탈했다"며 "정상적인 예매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심된다"고 말했다.
감시 피하는 되팔이, 손 놓은 플랫폼…법의 사각지대
현재 온라인 티켓 거래 플랫폼은 대부분 '개인 간 거래 중개'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플랫폼은 거래 가격에 대한 통제권이 없고, 감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래 방식도 진화했다.
과거처럼 실물 티켓을 우편으로 보내는 대신, 전자 티켓(PIN 전송)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플랫폼이 발급하는 보안코드를 통해 직접 티켓을 받을 수 있고, 거래 내역은 개인 간 메신저나 앱을 통해 진행돼 추적이 어렵다.
판매자 본인 인증도 허술해, 다수의 계정을 이용한 반복 거래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처럼 법적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 암표 거래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권장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암표 거래는 기술적·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연고지 팬조차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스포츠 콘텐츠 소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다. 단순한 시장 논리로만 볼 수 없는 영역이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그러나 입장권부터 무너졌다
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리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이미 매진됐다. 하지만 실제 좌석 중 일부는 암표로 전매된 채 비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은 경기장 밖에서 중계 화면을 지켜보거나, 수십만 원을 더 얹어야만 관람권을 얻을 수 있다.
기자는 총 36만 원이라는 가격을 지불하고 블루존 2매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좌석은 기자가 아닌, 정가로 야구를 즐기고자 했던 수많은 팬이 앉았어야 할 자리였다. 야구는 공정함의 스포츠지만, 적어도 관람석만큼은 이미 공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