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까지 021갤러리
아득한 곳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빛이 캔버스 위로 점차 퍼져나간다. 수많은 빛 알갱이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낸다. 각각의 우주는 동일한 형식이면서도 서로 미세하게 다른 형태와 밀도를 지닌다.
021갤러리(대구 동구 안심로 54)에서 열리고 있는 박아람 작가의 열 번째 개인전 '럭스(Lux)'에서는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왜 빛일까.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해 "빛을 재현하고 묘사하기보다 마음 속 상(像)을 표현한 것"이라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이미지 과잉의 시대, 그는 '내가 과연 이미지 하나 더 보태는 게 의미가 있을까' 라는 고민에 휩싸였고 이미지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동적인 마음이다. 예측할 수 없고, 법칙도 없는 마음의 움직임.
"어느 날 산책하다 노란 나비를 발견했어요.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나비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놓치고 보니, 다른 자리에 서 있더라고요. 색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구나 싶었고, 결국 그 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움직임을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에게 색은 마음의 현재 위치와 움직임을 표시하는 좌표와도 같다. 칸 하나를 4분할해 마치 스프레드시트처럼 질서 있게 행렬의 위치를 표시하는 인덱스(색인)로서 색을 사용한다. 얼핏 빛을 시각화한 듯 보이는 장면은 실상 마음의 좌표를 찍은 색면들의 구성이며, 이 색면들은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움직임을 또다시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작품이 크던 작던, 그는 스프레이가 아닌 스텐실 브러시 등으로 일일이 색을 찍어 작품을 완성한다. "마음이 움직일 어떤 다른 곳의 좌표를 찍는 느낌으로 작업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다. 그의 그림은 고정되지 않고 매 순간 변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담은, 동적인 세계를 품은 포털인 셈이다.
021갤러리 관계자는 "작가는 색의 배열과 특유의 원근법을 활용해 불가능한 시공간을 화면에 구축해내며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며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조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회화의 열린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5일까지. 일, 월요일 휴관. 053-743-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