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고, 그 해답의 중요한 축으로 퇴직연금이 주목받고 있다. 퇴직연금은 장기간의 적립과 전략적인 운용을 통해 은퇴 이후 삶의 질을 지켜주는 핵심 자산 관리 도구다. 따라서 제도의 구조와 운용 방식을 이해하고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국내 퇴직연금 제도는 확정급여형(DB형),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DB형은 퇴직 시 받는 금액이 근속연수와 평균임금에 따라 회사가 책임지고 지급되는 방식으로 안정성은 높지만 운용 성과에 따른 추가 이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그 운용 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실제 수령하는 퇴직급여가 달라지므로 근로자의 투자 역량과 선택이 성과를 좌우한다. IRP는 근로자가 추가 납입할 수 있고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로, 개인이 자율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다. 이 가운데 DC형과 IRP는 운용 성과의 차이가 곧 은퇴자산의 격차로 이어진다. 하지만 국내 현실을 보면 상당수 가입자가 여전히 원리금 보장 상품에 치중하며 보수적인 운용에 머물고 있다.
실제 수치를 보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우리나라 DC형 가입자의 78%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연평균 수익률은 2%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미국의 DC형 자산 가운데 80% 이상은 투자 상품에 배분되고 있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8%에 이르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시장 여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장기투자를 전제로 한 투자문화가 뿌리내려 있고 개인들이 자산 배분을 통해 적극적으로 위험을 관리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결국 우리의 퇴직연금 운용도 보다 적극적이고 다변화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근의 변화는 이러한 과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2024년부터는 퇴직연금을 해지하지 않고도 금융회사 간 이전이 가능해져 가입자가 더 넓은 선택권과 수익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과거 특정 금융회사에 묶여 있었던 제약이 사라지고, 운용 전략을 보다 유연하게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더불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인공지능 일임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금융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도 합리적인 자산 운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퇴직연금 운용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장기투자 문화를 받아들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결국 퇴직연금은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굴려야 하는 자산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며 단기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수익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군에 분산 투자해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투자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그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최소 연 1~2회는 자신의 퇴직연금 운용 현황을 점검하고 필요시 리밸런싱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후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미래다.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지만 퇴직연금은 우리가 미래를 조금 더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대비할 수 있는 확실한 도구다. 지금의 작은 선택과 습관이 20년, 30년 후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이제 나의 연금을 어떻게 굴릴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행동할 때다. 그것이 윤택한 노후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현명한 전략이다.
-IM뱅크 금융지점장 김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