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내공이 깊어지면 목소리가 낮아진다." 동양 철학의 깊이를 담은 이 말은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 던지는 날카로운 경고다. 지금 국회와 여의도는 거친 언사와 고함으로 떠들썩하다.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국민의 삶은 점점 작아진다. 정책은 하루가 멀다 하고 뒤집히고, 지도자의 지지율은 일관성 없는 행보 속에서 추락한다. 이는 단순한 여론의 기복이 아니다. 국가를 이끌 인재의 부재가 낳은 국력의 위기다.
역사적으로 진정한 강국은 무기보다 인재를 무기로 삼았다. 중국 고대 속담에 '백전백승은 하전(下戰), 인재를 얻는 것이 상전(上戰)'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서울대 하나를 키우는 데도 논란이 일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구호는 현실의 무게 앞에서 허공에 흩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2023년 기준 중국 최고의 대학은 한국 최정상 대학보다 무려 7.6배 많은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산 51위에 불과한 중국 대학이 한국 1위 대학보다 더 많은 자금을 받는 현실. 이는 단순한 재정의 차이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국가의 철학적 격차다.
그 결과는 뚜렷하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최고 대학은 중국 3대 명문보다 글로벌 랭킹에서 앞섰다. 그러나 2024년, 그 위치는 중국 5위 대학에도 밀리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중국의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분야를 이끄는 브레인코의 한비청(韩壁承) CEO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그를 졸업생으로만 기억했지만, 중국은 그를 '국가적 자산'으로 키웠다. 한국 졸업생은 자소서를 쓰는 사이, 중국은 창업계획서를 심사하고, 실험실에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키워낸다.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의 시대' 논리를 고집한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천재 하나가 국가를 먹여 살리는' AI 시대에 진입했다. 중국은 하루 2~3만 개의 기업이 탄생하고, 전 세계 유니콘의 23%를 배출한다. 반면 한국은 1%에 머문다. 그들의 일과는 '월화수목금금금', 우리의 일과는 '4.5일'이다.
중국의 996 문화(IT·스타트업 업계에서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의미하는 장시간 근무 관행)가 비인간적이라 비판 받지만, 그 안에 담긴 '생존을 위한 집요한 도전'은 무시할 수 없다. 화웨이, 딥시크의 뒤에는 15세에 대학에 입학한 영재들이 밤을 새며 개발한 기술이 있다. 그들에게는 파격적인 보상과 무한한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 정치는 여전히 '내 편 외 편'의 투쟁 논리에 갇혀 있다. 최근 20년 간 한국 대통령 5명 중 4명이 탄핵이나 수사를 경험했다. 서방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지옥행 티켓"이라며 비아냥거린다. 이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통치 시스템의 붕괴를 상징하는 비극이다. 국민은 '최악 대신 차악'을 뽑았을 뿐인데, 집권 세력은 이를 '민심의 대승'으로 오인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 그 결과는? 0%대 성장률, 청년 실업, 기업의 해외 이탈이다.
진정한 리더십은 40% 지지층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60%의 반대층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정책은 묘수(妙手)로 승부해야지, 목소리로 이길 수 없다. 특히 인구 4.6%의 지역에서만 외쳐대는 야당의 정치는 수도권 51%인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역사는 명확하다. 국력의 원천은 결국 인재다.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때만이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진실이 된다. 지금처럼 0%대의 성장이 이어진다면, 국민은 배를 띄우는 물이 아니라 전복시키는 물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문을 닫고 있다면, 우리는 '코리안 드림'을 열어야 한다. 중국보다 높은 성장,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국가 비전을 만드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년 간의 추락을 2년 만에 회복할 순 없다. 그러나 20년 후, 다시 5%대 성장을 꿈꾸는 전략은 지금 세워야 한다.
결국 국력의 중심은 인재력이다. 인재를 키우고, 보내고, 불러들이는 국가, 그곳에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