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그때 그사건
2018년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
"너희에게 맞을 바에는 차라리 떨어져 죽겠다."
괴롭힘을 당하던 14세 소년은 그렇게 외치며 옥상 난간에 몸을 올렸다. 그의 말을 누군가는 비웃었고, 누군가는 외면했다. 소년은 결국 손을 놓았다. 15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몸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2018년 11월 13일 오후 6시 38분,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 14살 소년은 15층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부어 있었으며 몸 여기저기엔 구타 흔적이 가득했다.
그의 앞에는 친구였던 4명의 또래가 있었다. 그가 그곳에 올라가게 된 이유는 단순한 놀이나 말다툼이 아니었다. 이들 4명에게 무려 78분간 집단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하다 더는 버티지 못했다.
◇1시간여의 폭행...피할 곳은 '죽음'뿐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들과 평소 함께 어울리던 사이였다. 하지만 A군의 아버지를 유명 인터넷 방송인에 빗댄 농담 한 마디가 폭행의 시작이 됐다. 그 말을 문제 삼은 A군은 친구들과 함께 피해자를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2018년 11월 13일 새벽 1시 14분 인천 연수구의 한 PC방. 피해자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A군 등은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처음엔 전자담배 한 개가 목표였다. "전자담배를 줄래, 아니면 맞고 끝낼래?" 협박 끝에 피해자는 전자담배를 건넸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공원으로 피해자를 끌고 간 가해자들은 주변을 에워싼 채 피해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얼굴과 복부를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가 도망치자 이른바 '사냥놀이'를 하듯 쫓아다녔고, 끝내 더 큰 폭력을 가하기로 결심했다.
잠시 도망친 피해자를 다시 불러낸 건 그날 오후 3시 30분쯤이었다. A군은 "전자담배를 돌려주겠다"며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D양과 합류했다. D양은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A군은 "얘 좀 패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D양을 불렀다. 그렇게 이들은 다시 피해자를 끌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15층 옥상.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옥상문뿐이었지만, 그 문 앞에도 가해자들이 서 있었다. "30대만 맞아라. 피하면 10대씩 늘어난다." A군의 말에 폭행은 시작됐다.
A군은 피해자의 종아리를 걷어차고, 넘어진 그의 목과 쇄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C와 B군과 D양은 번갈아 가며 뺨을 때리고, 피해자의 입에 껌을 뱉고 침을 뱉었다. 중요부위를 노출시키고 조롱했고, 담배 3개를 피해자 입에 물린 채 "떨어뜨리면 또 맞는다"고 했다.
피해자는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D양은 그의 입을 틀어막았고, C군은 옥상문을 확인한 뒤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폭행이 시작됐다.
머리를 벨트로 내리치고, 엎드린 피해자의 등을 밟고, 슬리퍼로 얼굴을 때리고,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다. 그 사이 피해자는 기절한 척하기도 하고, 눈을 감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머리는 다시 발에 찍혔다.
오후 6시 38분. 잠시 폭행이 멈춘 틈. 피해자는 담벼락에 다가갔다. 3m 아래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 속에서 소년은 실외기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지만 중심을 잃었다. 실외기에 닿은 흔적은 있었지만, 착지에 실패한 그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저 패딩도 아들 거예요"…아이 잃은 엄마의 절규
사건 이후 가해자 중 한 명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포토라인에 섰다. 그가 입고 있던 베이지색의 그 점퍼를 본 피해자의 어머니는 말없이 무너졌다. 피해자의 옷이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러시아 국적의 이주 여성으로, 아들과 단둘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가 숨진 뒤 인터넷에 러시아어로 "저 패딩도 내 아들 거예요"라는 글을 올리며 분노와 절망을 토해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자살로 보기 어려웠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옥상 담을 넘어 아래 에어컨 실외기 위로 피신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장시간에 걸친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극단적 행동을 유도했고, 사망은 이 폭행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시했다.
판결은 다음과 같았다. A군 징역 장기 7년, 단기 4년. B군 징역 장기 6년, 단기 3년. C군 징역 장기 3년, 단기 1년 6개월, D양 징역 장기 4년, 단기 2년.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모두 만 14세에서 16세 사이의 청소년이었다. 형법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정기형으로 선고됐고, 양형 기준도 적용되지 않았다.
법원은 "피해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와 수치심 속에서 살기 위해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며 "가정과 사회가 이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지만,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간 행위의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