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스리랑카 시골학교의 축제 같은 만남

입력 2025-09-18 13: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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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줄을 서서 여행자인 필자에게 정성껏 만든 환영꽃다발을 건네주고, 선생님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전교생이 줄을 서서 여행자인 필자에게 정성껏 만든 환영꽃다발을 건네주고, 선생님들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 마음이 닿은 곳, 엘레토타의 작은 학교에서

스리랑카의 고요한 산골 마을, 엘레토타(Ellethota)는 지도에서조차 찾기 힘든 작은 점 같은 곳이다. 여행자가 머물던 샤모디(chamodi)가족의 집에서 도보로 한 시간, 차밭과 숲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산맥에 둘러싸인 초록빛 능선 위로 작은 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학교의 이름은 엘레토타 비디얄라야(B/ Ellethota Vidyalaya) 초등학교다.

엘레토타는 차 농장과 원시림의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26가구가 채소와 차를 재배하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난은 젊은이들을 도시로 떠나게 만들었고, 남은 건 극빈의 생활을 감내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 고립된 마을은,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하고 빛나 보였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 앞, 낡은 문에는 여행자의 사진이 붙어 있고, 교복을 단정히 입은 아이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작은 교정은 아이들이 꺾어온 야생화와 직접 그린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18명의 전교생은 수줍은 미소속에서 정성껏 만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8명의 선생님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여행자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환영의 마음을 표현했고, 선생님들은 손수 만든 감사카드와 플랭카드를 내밀었다.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환영의 마음을 표현했고, 선생님들은 손수 만든 감사카드와 플랭카드를 내밀었다.

안내된 교실 겸 강당에는 환영식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불교의식으로 시작된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의 환영사와 여행자의 인사가 이어지고,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환영의 마음을 표현했다. 아이들이 손수만든 감사카드와 플래카드를 내밀 때, 여행자는 비로소 이 마을의 소중한 손님이자 친구가 되었음을 느꼈다.

준비해 간 학용품과 선물을 나누어 주었지만, 되돌아온 건 훨씬 더 큰 선물이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 선생님들의 따뜻한 악수, 주민들의 정성어린 음식과 미소. 그 모든 순간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선물이 되었다.

밝고 맑은 눈빛의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 마을 사람들의 정이가슴 깊이 스며들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밝고 맑은 눈빛의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 마을 사람들의 정이가슴 깊이 스며들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여행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임을, 이곳에서 배웠다. 작은 나눔 하나가 국경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그것은 소박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민간 외교의 장면이 되었다. 여행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한 끼 식사를 나누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진짜 아름다움은 지도의 바깥,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엘레토타의 아이들과 함께한 그날의 따뜻한 축제는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반짝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따라, 새로운 마을의 길 위에서 더 큰 따뜻함을 마주하길 바란다.

타밀족의 퐁갈축제는 화려한 가마행렬이 마을을 돌고, 탈을 쓴 무사들은 칼춤을 추며 악귀를 쫓는 의식을 펼치며, 집집마다 기도를 한다.
타밀족의 퐁갈축제는 화려한 가마행렬이 마을을 돌고, 탈을 쓴 무사들은 칼춤을 추며 악귀를 쫓는 의식을 펼치며, 집집마다 기도를 한다.

◆ 스리랑카 타밀족의 퐁갈 축제

이웃마을 타밀족이 사는 곳에서 열리는 퐁갈(Pongal)축제에 함께하자는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미리 준비해 준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비 내리는 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서자,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맞이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기어린 모습으로 따라오며 키득거리고, 어른들은 웃으며 손짓하고 반겨준다.

퐁갈은 타밀족의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로, 태양신에게 풍성한 수확에 감사드리는 4일간의 축제다. 2025년에는 1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이어지며, '퐁갈'이라는 말 자체가 '넘쳐흐르다'라는 뜻을 지닌다. 축제의 상징은 점토그릇에 우유가 끓어 넘치는 장면인데, 이는 풍요와 번영이 가득 차 흘러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단다.

마을에서는 사탕수수, 쌀, 강황 등 막 수확한 작물들이 제물로 올려지고, 마당에서는 쌀과 렌틸콩, 우유를 넣고 달콤한 퐁갈 요리를 끓인다. 바나나 잎에 담겨 나오는 요리는 향신료, 캐슈넛, 건포도로 풍미를 더해 그 달콤함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타밀족의 퐁갈축제는 화려한 가마행렬이 마을을 돌고, 탈을 쓴 무사들은 칼춤을 추며 악귀를 쫓는 의식을 펼치며, 집집마다 기도를 한다.
타밀족의 퐁갈축제는 화려한 가마행렬이 마을을 돌고, 탈을 쓴 무사들은 칼춤을 추며 악귀를 쫓는 의식을 펼치며, 집집마다 기도를 한다.

길을 따라가며 본 집집마다의 장식은 경이롭다. 바나나와 망고 나뭇잎으로 현관을 치장하고, 바닥에는 쌀가루로 그린 다채로운 '콜람(kolam)' 문양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집 앞에 제사상을 차려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낡고 어두운 것을 털어내고 새로움과 좋은 기운을 맞이한다.

이날 마을은 하나의 거대한 축제의 무대였다.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가 행렬을 이루어 마을을 돌고,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춤과 음악으로 흥을 더했다. 탈을 쓴 무사들은 칼춤을 추며 악귀를 쫓는 의식을 펼쳤고, 사람들은 그 행렬을 따라 움직이며 함께 축제를 즐겼다. 그 속에 여행자도 이방인이 아닌 마을사람이 된 듯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환대였다. 몇몇 집에서는 마치 오랜 벗을 맞이하듯 여행자를 끌어들이며 음식과 차를 내어주었고, 가족들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번영과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주었다. 그 순간, 축제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따뜻한 공동체의 품으로 들어간 경험이었다. 감사와 전통, 그리고 함께 나누는 기쁨이 어우러진 그날의 아름다운 문화가 지닌 깊은 울림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었다.

몇몇 집에서는 마치 오랜 벗을 맞이하듯 여행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음식과 차를 내어주고, 어깨에 손을 얹고 덕담을 해 주었다.
몇몇 집에서는 마치 오랜 벗을 맞이하듯 여행자를 집으로 끌어들여 음식과 차를 내어주고, 어깨에 손을 얹고 덕담을 해 주었다.

◆ 환영잔치 같은 마을의 만찬

산골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환영행사가 끝난 뒤, 그 소식은 금세 마을 전체에 퍼져 나갔다. 낯선 여행자가 아이들과 학교를 돕고 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길에서 마주치면 말을 걸고, 집으로 불러들여 차와 과일을 내어주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특히 한국에 가족을 두고 있는 집에서는 더욱 깊은 친근감을 보였다. 한국에서 일해 번 돈으로 집을 새로 짓고 땅을 사서 여유있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그 고마움을 여행자에게까지 전하고 싶어 했다.

며칠 뒤,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여행자를 위한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이건 마을 사람들의 뜻'이라며, 어려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나눈 여행자에게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감사라고 했다. 결국 마을에서 이장 격인 집에 100여 명이 모여, 축제 같은 저녁잔치가 열리게 되었다.

마을사원에서는 간단한 의식을 하고, 여행자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주었다.
마을사원에서는 간단한 의식을 하고, 여행자의 번영과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를 해주었다.

바나나 잎으로 장식한 꽃, 집집마다 가져온 고기와 신선한 채소들, 큰 솥과 냄비에서 타오르는 장작불, 그 풍경은 단순한 저녁준비가 아니라, 하나의 잔치였다. 남녀가 따로 모여 식사했지만, 웃음소리와 이야기꽃이 오가며 활기로 가득 찼다. 준비된 그릇이 부족해 돌아가며 사용해야 할 정도였지만, 마늘과 고추, 그리고 텃밭에서 길러낸 채소로 만든 요리들은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술을 허용하는 스리랑카지만, 이 자리에서는 특별한 건배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정이 담긴 식사자리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화려한 잔치의 흥겨움은 없었지만, 진심 어린 배려와 환영의 마음이 담긴 만찬은 그 무엇보다 값지고 따뜻했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 악수를 나누며 '꼭 다시 오라'는 인사를 받는 순간, 이 마을의 순박한 정과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언젠가 다시 돌아와, 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 깊이 새겼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