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감독 한목소리...기대 속 '견제 기능 약화' 우려도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밝힌 '금융 대전환'의 청사진이 약 한 달 전 취임한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정책 방향과 사실상 '판박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위기 진단부터 해법으로 제시한 ▷생산적 금융 ▷주주가치 제고 ▷소비자 보호 강화 등 핵심 정책들이 대부분 일치했다.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장은 15일 취임사를 통해 "우리 경제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세 가지 방향의 금융 대전환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8월 14일 이찬진 금감원장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고착화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새로운 성장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두 금융당국 수장이 공통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금융의 역할 재정립이다. 손쉬운 담보대출 위주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 동력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견인할 생산적 영역으로 자금을 중개하겠다"며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과 벤처·기술기업에 정책자금을 집중 공급하겠다"고 알렸다. 특히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첨단전략산업에 대규모 맞춤형 자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 원장이 취임사에서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고 자본시장의 자금 공급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과 궤를 같이한다. 금융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겠다는 것.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한 '주주가치 제고' 역시 공통된 목표로 제시됐다.
이 위원장은 "개정 상법의 안착과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으로 주주가치 중심의 기업경영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 또한 "상법 개정안의 성공적인 안착을 지원해 대주주와 일반주주 모두의 권익이 공평하게 존중받을 수 있는 질서를 잡아나가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있어서도 '사전 예방'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이 위원장은 "금융사의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하고 실질적인 사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원장 역시 "감독·검사 기능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지목한 점도 동일했다.
금융위워장과 금감원장이 일관성있는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예측 가능성과 추진력이 담보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는 정책을, 금감원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독하는 등 역할이 구분된다. 그런데 지나치게 비슷한 목소리를 낼 경우, 정책과 감독 사이의 '견제와 균형' 원리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
금융권 관계자는 "감독기구가 정책기구의 방향에 밀접히 동조하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정책의 부작용이나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제대로 지적하고 보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특히 생산적 금융이라는 명분 아래 특정 산업으로 자금 쏠림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건전성 문제를 감독 당국이 간과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