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쇠에 굽고, 철판에 볶고…
70년대 1인분 100원 '서민 음식'…춘천 명도 등 7곳에 닭갈비 골목
한식에는 여러 갈비가 있다. 찜갈비, 갈비찜, 고갈비, 돼지갈비, 소갈비, 양갈비, 염소갈비, 달갈비와 물갈비까지. '고갈비'는 부산 용두산공원 아래에서 태어난 '고등어갈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주 소개할 닭갈비와 물갈비는 강원도만의 식문화가 흥미롭게 개입돼 있다. 춘천은 '닭갈비', 태백은 '물갈비'로 유명하다. 춘천 닭갈비 대박 신화는 편리해진 교통망과 연이은 방송 노출 덕이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 대개통과 2011년 12월21일 춘천행 지하철 개통 후 주말 서울 등 경기권은 물론 경상도권에서까지 몰려온 맛투어족 덕분에 춘천은 '닭갈비왕국'으로 등극한다. 덩달아 서울~춘천 사이에 있는 강촌과 대성리역권도 닭갈비벨트로 묶인다. 대구는 1985년에 동성로에 대구 첫 '춘천닭갈비'가 오픈, 지금까지 영업 중이다.
◆춘천닭갈비의 유래
춘천닭갈비는 크게 닭불고기와 닭갈비 스타일로 나뉜다. 닭불고기는 '석쇠구이', 닭갈비는 '철판볶음'이다. 대구에 내려온 건 철판볶음형. 닭불고기가 선배 격이고 닭갈비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 스타일로 보면 된다.
2003년 춘천닭갈비의 유래가 드러난다. 발상지는 춘천 중앙로2가 18번지. 1959년 현 삼성생명 주차장과 주차장 옆 삼성생명 현관 계단 사이에서 판자로 된 조그만 돼지갈빗집이 생겨난다. 당시에는 버스터미널로 사용되었으며 인근에 있는 현 중앙로2가 11번지 조흥은행은 강원합승 종점이었다. 60년 어느 날 거기서 돼지갈빗집을 운영하던 김영석 씨(작고)가 우연찮게 닭갈비를 요리하게 된다. 돼지고기를 구하기 어려워 대신 닭 2마리를 사 와서 닭을 토막 내 돼지갈비 같은 최초의 닭갈비를 만든 것.

닭갈비는 이후 드럼통 위에 무쇠판을 올려놓고 연탄불을 지펴 닭갈비를 구워 파는 닭갈비 포장마차, 연탄닭갈비, 숯불닭갈비, 춘천닭갈비(무쇠판 볶음 스타일) 등으로 진화를 거듭한다. 70년대 초부터는 닭갈비만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71년 지금과 같이 둥근 철판 형태의 11㎜ 두께 닭갈비판이 등장한다. 양배추, 썬 고구마, 가래떡 등을 양념한 닭고기와 함께 볶아내는 오늘날의 춘천닭갈비 모습을 갖추게 된다. 김 씨의 사망과 가게 폐업으로 현 춘천닭갈비 원조집은 없다고 봐야 된다.
◆산업화 과정
70~80년대까지만 해도 150g 정도의 닭갈비 1인분 값이 100~500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춘천닭갈비는 '대학생 갈비' 또는 '서민 갈비'란 별명이 붙었다.
서민과 함께한 춘천닭갈비는 영세상인들에 의해 숯불구이에서 불판구이로 전환된다. 초창기부터 줄곧 뼈를 포함하여 통마리 닭을 잘라 팔아온 형태가 90년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뼈 없는 닭갈비·닭다리 고기만으로 만든 닭갈비로 전환되었다.
뼈 없는 닭고기와 닭다리 고기만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합된 측면도 있다.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다리 고기의 출현으로 뼈 없는 다리 살을 사용한 원인도 있다었다. 하지만 원료육뿐 아니라 토막 내는 방법, 닭고기 부위, 냉동육이나 냉장육, 수입육 사용 여부, 양념을 비롯한 가열방법 등에 대한 과학적, 행정적 품질관리 체계가 미비했다. 춘천닭갈비 발전을 위해 2004년 9월 당시 최성동 시의원이 중심이 되어 '춘천닭갈비 발전연구회'가 발족되고 이후 '춘천닭갈비협회'도 발족된다.
◆홍천닭갈비와 춘천닭갈비
원래 닭갈비의 탄생지는 춘천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홍천군이다. 홍천식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끓이는 '닭볶음탕'. 양념한 닭과 각종 채소를 철판에 볶아내는 춘천의 닭갈비와는 요리 방법이 전혀 다르다. 갈빗살을 전혀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닭갈비라 이름 붙여진 것은 원조가 뼈째 포를 떠 석쇠에 구워 손으로 잡고 뜯어먹는 형태였기 때문.
현재 춘천닭갈비는 대부분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낸 닭고기를 양념장에 버무려 7~8시간 이상 재운다. 각자 비법이 따로 있지만 양념장에는 다진 마늘과 생강, 양파, 고춧가루, 설탕, 간장, 맛술 등 20여 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이후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도톰하게 썬 양배추, 고구마, 당근, 깻잎 등과 함께 볶아 먹는다.

◆춘천닭갈비 골목
춘천닭갈비는 대구의 막창곱창 골목처럼 명동, 낙원동, 후평동, 온의동, 만천리, 동면, 신북면 등 모두 7군데에 산재한다. 외지인들에게는 명동만 잘 알려져 있다.
강원도청 근처에 있는 번화가 '명동닭갈비골목'. 꼭 대구의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초입을 연상시킨다. 행정구역상으로 여기는 조양동. 그런데 1960년대 요선동시장이 큰 화재를 당해 중앙로와 조양동 사이가 공백이 된다. 춘천시와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불탄 자리에 새로운 쇼핑가를 꾸밀 계획이었다. 그래서 벤치마킹한 게 서울 명동. 그렇게 해서 춘천에 명동이 생겨난다. 68년부터 명동 골목에 우미, 육림, 뚝배기집, 대성 등 4개 업소를 시작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닭갈빗집들이 들어서면서 닭갈비골목이 형성된다. 현재는 135m 골목에 20여 업소가 성업 중이다.
업소들은 93년 '계명회'라는 친목단체를 설립했다. 한류드라마 '겨울연가'의 영향으로 남이섬을 찾은 일본 여성팬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관광코스로도 이름을 날렸다. 외국 관광객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함께 표기했다. 골목 곳곳에는 조형물과 경관 조명을 새롭게 설치했다. 명동과 브라운5번가 입구 등 닭갈비골목으로 통하는 길목 3곳에는 조형물과 문화홍보판을 설치했다. 골목 중간에 포토존을 설치하고 휴게공간을 마련했다.

초창기 버전의 닭불고기가 먹고 싶어 지척에 있는 '원조숯불닭불고기집'으로 갔다. 현재 춘천닭갈비 업소 중 최고참급이다. 참숯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기가 꼭 대구의 북성로 돼지불고기를 닮았다.
다음으로 유명한 닭갈비거리는 소양강댐에서 지척인 '신북닭갈비촌'. 여기는 춘천 3대 막국수 중 하나인 샘밭막국수 등이 포진하고 있어 '막국수거리'로도 불린다. 근처에 막국수체험박물관까지 있다. 이 거리는 너무 현대풍이다. 내 입맛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맛은 비슷한데 업소 간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럴 땐 덜 유명한 집이 유리하다. 그 거리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한 '통나무집', 승용차로 가득하다. 소문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하루를 기다려서도 그런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기자는 노선을 바꿨다. 한산한 '마적산닭갈비'를 찾았다.

◆태백 물갈비
홍천식 닭갈비를 닮은 게 태배물갈비. 원래 닭갈비는 '지지고 볶는' 음식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혜가 모아져 태백닭갈비는 '조리는 음식'으로 변모했다. 자작자작한 태백닭갈비는 산골사람들의 음식이면서 광부들의 음식이다. 광산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사람들은 타지로 살길을 찾아 떠났지만 태백닭갈비는 옛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태백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단한 삶이 만든 음식닭갈비의 일반적인 모습은 불판에 닭과 양념을 섞어 볶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태백 닭갈비는 육수가 생명이다. 일종의 물닭갈비. 그러나 처음에는 육수로 끓이지만 나중에는 자작자작한 양념 형태만 남는다. 그래도 물닭갈비라 한다.
태백닭갈비의 시작은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40년 전 1970년대 태백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광부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극한의 고통은 매일 반복됐다. 광부로 살아가려면 체력은 필수였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광부들은 돼지고기, 닭고기를 즐겨먹었다. 처음엔 광부들도 닭을 구워먹거나 볶아 먹었다. 막장에서 방금 나온 광부들에게 국물 없는 음식은 괴로움이었다. '닭갈비가 잘 넘어가지 않으니 물좀 부어 봐요'
그렇게 닭갈비에 육수가 첨가된다. 양념된 닭에 물을 붓고 면과 채소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볶음밥으로 식사를 끝냈다. 태백 닭갈비는 광부들이 원하는 맛‧효능‧양의 삼박자를 갖추면서 삽시간에 대중으로 퍼져 나갔다.
육수는 닭발과 닭뼈로 우려낸다. 양념장은 간장, 고춧가루, 마늘 등 10여 가지를 넣어 만든다.닭과 태백산 산나물과 냉이, 쑥갓 등도 올라간다. 198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는다. 황지동 여관 골목에 전문 음식점이 하나 둘 생기면서 군락을 이루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송이분식, 황가네, 승소는 누구나 알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도시 태백의 인구는 빠르게 줄었고 덩달아 태백닭갈비의 원조격으로 불리던 가게 세 곳은 문을 닫았다. 그 뒤를 이어 마당쇠와 김서방네, 태백닭갈비 등이 명맥을 잇고 있다.
태백닭갈비는 태백산 특산물인 곰취와 취나물, 부추 등을 사용한다. 10월에서 4월까지는 냉이를 쓴다. 흔히 넣는 쑥과 미나리는 향이 강해 닭갈비 고유의 맛을 퇴색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덧붙이는 말
닭갈비 안에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다. 춘천에 사는 사람들도 닭갈비를 무쇠불판에서 요리하는 줄 안다. '숯불구이 스타일'로 먼저 출발했다는 것, 그리고 춘천닭갈비 이전에 그 옆 홍천군에서 '닭볶음탕 스타일'로 출발했다는 것, 그것과 연동돼 한국 탄광부흥기 때 태백광부들에 의해 전골 형태의 '물갈비'가 태어났다는 것. 언떳 춘천숯불닭불고기는 대구식 복불고기와 청송 신촌 약수터 닭떡갈비 절충식인 것 같았다. 그리고 추가로 그 물성에 생강즙이 미량 가세하면 맛의 스펙트럼은 더욱더 너울거릴 것 같았다. 맛의 길은 길고도 멀다.
wind30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