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의 첫 문장이다. 모든 사람이 깡통으로 변신한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도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서 탈출한 어린 깡통은 길섶에 누워 짐칸에서 들었던 얘기를 회상했다. 몸이 동강났다고 반토막깡통으로 불리던 깡통이었다. 자신은 깡통으로 태어난 게 벌써 세 번째라고 했다.
그는 깡통에게도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고 했다. 그러곤 꼴불견 유형에 대한 예시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소리만 요란한 깡통. 위용을 자랑하다 굴러떨어져 등허리가 우그러진 깡통. 청풍명월을 읊조리며 날마다 이슬로 눈을 씻곤 하늘만 쳐다보는 깡통. 욕심껏 쑤셔넣은 탓에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인 깡통, 목소리 높이는 게 장땡이라고 밤낮으로 깡깡거리다 격리된 깡통, 속은 잔뜩 부패했으면서 겉은 맑고 깨끗한 색으로 포장한 깡통, 힘없는 깡통들을 속여 바람벽을 치게 만드는 깡통….
말하자면 끝이 없었다. 모든 깡통의 결말은 같다고 했다. 강철 아가리에 던져져 압착돼 나온다는 것. 떠벌리던 입들은 싹 뭉개져 신음조차 낼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 과정을 묘사할 땐 어린 깡통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새로 태어나는 기쁨도 있지." 어린 깡통은 반토막깡통이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만 가슴에 새겼다. 잘 몰랐지만 듣기에 좋았다.
어린 깡통은 갈증과 허기는 견딜 만했으나 마음이 허전한 건 참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노인이 어린 깡통을 집어들었다. 어린 깡통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사는 반지하방은 너무 어두웠다. 노인은 어린 깡통의 빈 속에 흙을 채우고 씨앗을 심었다.
시간이 흘러 어린 깡통은 뭔가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걸 느꼈다. 심장이 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더 시간이 흘러 흙 속에서 새싹이, 더더욱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빨간 꽃 세 송이가 피었다. "내가 좋아하는 채송화군요. 고마워요 영감." 어린 깡통은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리보전하고 있던 할머니가 이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른 낫기나 하구려." 할머니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얹고 온 노인이 깡통을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겼다. "참 고와요." 할머니가 밭은 기침을 하고 난 뒤 눈물을 글썽였다. 아파야만 눈물이 나는 게 아니란 것쯤 어린 깡통도 알고 있었다. 어린 깡통은 배에 힘을 줬다. 어린 깡통은 알 것 같았다. 새로 태어나는 기쁨은 어떻게 비우고 어떻게 채우느냐에 달렸다는 것. 그건 반토막깡통이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