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 평양을 방문,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직전 현대그룹이 금강산 관광사업 등 대북 사업권 확보 등을 조건으로 4억5천만달러(약 5천억원)를 송금한 사실이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특검은 현대그룹의 대북 송금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의 대가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 없이 이를 '고도의 통치행위'로 간주, 사법 심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다만 대북 송금과 회담을 주도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해 외환거래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 손실 및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 징역 2년형의 유죄를 확정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4년 7월 1일, 2020년 미 의회 난입 사건 등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결과 전복 시도 혐의에 대해 "재임 중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면책'(absolute immunity)이 있다"며 면책(免責)을 인정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불복(不服) 시도를 통치행위의 하나로 인정한 셈이다.
내란죄로 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주목되는 것은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 77조(계엄)는 '①대통령은 전시(戰時)·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③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정권한이나 사법권한의 일부를 군사 당국이 행사하게 할 수 있다' 등이 규정돼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전시·사변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헌법적 권한 행사지만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위한 국헌 문란(紊亂) 행위였는지 여부가 내란죄 구성 여부의 핵심 쟁점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가 논란이다. 헌법 제101조엔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군사법원'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계엄 등 특정 사건만을 전담하는, 정치권이 법관 인사권을 쥔 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다. 재판관 임명을 민주당이 주도하겠다는 것은 사실상의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특별재판부 설치 시도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위법이긴 해도 내란 행위가 아니라 통치행위로 인정될 수도 있다는 여권 내부의 우려가 불거지면서 내놓은 정치적 꼼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특별재판소가 설치된 적이 있다.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가 설치됐고, 5·16 군사정변 후 군사혁명재판소가 설치됐다. 지금이 그때와 같은 비상시국인가?
민주당은 "사법부가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는 국민적 불신이 크다"면서 '내란 및 불법 계엄 관련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되 국회와 판사회의, 대한변협이 각각 3명씩 후보자를 추천, 대법원장이 3명의 재판관을 임명한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사법부보다 입법부에 대한 불신이 몇 배 더 높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지역구)은 50.36%로 과반을 넘었지만 국민의힘(45.17%)에 비해 조금 더 높았을 뿐이다.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려는 명분보다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고 '특별한 민생국회'를 재구성하라는 국민 요구가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