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네트워크·가업 전승·생활서사로 본 오늘의 메시지
조선시대의 '가(家)'는 단순한 혈연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작은 공동체였다. 족보와 묘지명, 입후 같은 제도는 물론 가업과 일상의 기록까지, 한 가문은 네트워크이자 문화적 유산의 축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 같은 전통을 새롭게 조명하며, 최근 발간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9월호를 통해 '작지만 큰 사회, 가(家)'를 집중 탐구했다.
◆족보, 네트워크의 지도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권기석 동국대 교수는 족보를 '가문의 명부'가 아닌, 혼인과 혈연을 엮어낸 인적 네트워크의 지도라고 설명한다. '안동권씨성화보'처럼 아들과 딸의 자손을 차별 없이 기록한 사례에서 보듯, 조선 전기의 족보는 문중을 넘어서는 연결망으로 기능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부계 중심으로 축소됐지만, 여전히 여러 문중을 잇는 역할은 유지됐다.
최근 출범한 '한국 족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역시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족보가 단순한 문중 기록을 넘어, 사회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보고(寶庫)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움직임이다.

◆가업의 현대화, 명인안동소주의 세계화 도전
명인안동소주 3대 전수자인 박춘우 본부장은 가업을 계승하면서도 발효공학 지식을 접목해 전통을 현대화했다. 500년 역사의 '3단사입법'을 지키되 감압식 증류 방식을 도입해 잡미를 줄이고, 장기 숙성으로 깊은 풍미를 살렸다.
그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브랜딩에도 적극 나섰다. SNS 스토리텔링, 세련된 패키지, 음식과의 조화를 앞세운 마케팅은 명인안동소주를 새로운 소비층과 연결했다. 현재 개발 중인 '오크통 숙성 안동소주'는 스코틀랜드 시음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했다.
◆가족 서사, 오늘의 공동체를 비추다
'웹진 담' 9월호는 또한 조선의 가족 서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콘텐츠를 다뤘다. 웹툰 '아내의 묘지명'은 뒤늦게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고백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연극 '퉁소 소리'는 '최척전'을 재해석해 전쟁으로 흩어진 가족의 재회를 그리며 올해 백상연극상을 수상했다.
또한 17세기 예안 사족 김광계의 '매원일기'는 당시 가문이 생활, 의례, 지식, 정치까지 포괄했던 복합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조선의 '가'가 단순한 사적 단위를 넘어 공적 기능까지 수행했던 '작지만 큰 사회'였음을 드러낸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조선의 가문이 남긴 기록과 전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공동체적 가치와 연결의 의미를 일깨운다"며 이번 '웹진 담' 9월호 발간 취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