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멈추지 않는 농기계 사고, '안전 없는 현장'의 비극

입력 2025-08-18 18:27:32

사회2부 윤영민 기자
사회2부 윤영민 기자

"안전사고는 우연히 오지 않는다."

산업재해 전문가들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농촌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농기계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안전 시스템의 공백에서 비롯된 필연적 참사로 느껴지고 있어서다.

지난 17일 경북 예천에서 또 한 명의 농민이 경운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내리막길에서 조작을 잘못해 기계에 깔려 숨진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얼마 전 청송, 영양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굴착기가 전도되고, 고속분무기가 저수지로 추락하며, 농기계에 깔린 채 발견되는 사고가 줄지어 이어졌다. 통계는 이를 증명한다. 2023년 경북에서만 농기계 사고는 665건, 이 가운데 39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4년에는 사고가 719건, 사망자는 51명으로 더 늘었다.

사고의 주인공은 대부분 고령 농민이다. 60대 이상에서 발생한 비율이 85%를 넘는다. 70대와 8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은퇴 후 생계를 잇기 위해, 혹은 줄어든 노동력을 대신하기 위해 택한 농기계가 결국 삶을 앗아가고 있는 셈이다.

원인은 뚜렷하다. 현재 농기계의 모습은 수십년 전 시골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다. 농기계는 안전벨트, 에어백, 차체 보호장치가 사실상 없는 상태로 계속 생산되고 있다. 경운기는 무게 중심이 높아 조금만 기울어도 쉽게 전복된다. 분무기(SS기)는 엔진과 살포 장치가 앞에 몰려 있어 비탈길에서 균형을 잃기 쉽다. 운전석은 노출돼 있어 사고 시 충격을 그대로 받는다. 농민들은 수십년 전부터 안정장치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농기계를 '맨몸'으로 기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 농로는 좁고, 비탈길은 미끄럽다. 도로를 달리는 경운기는 후미등조차 없이 밤길을 버틴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조건에 고스란히 방치돼 있다. 농촌의 현실은 '개인의 조심'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지자체는 대책을 내놓는다. 위탁경영을 장려하고, 안전교육을 늘리고, 홍보자료를 배포한다. 그러나 홍보물만 쌓인다. 농민들은 "현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과 홍보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예천군이 IoT 센서와 기울기 감지 장치를 시범 도입했지만, 전체 농기계 보급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결국 관건은 제도와 장비의 현대화다. 정부와 지자체가 구식 농기계를 신형으로 교체하도록 지원하고,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 농촌 고령화가 심화되는 만큼, 기술적 보완 없이는 사고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 농업안전 전문가는 "농기계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며 "이제는 장비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은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 일손은 줄고, 일은 그대로다. 기계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고령의 농민들이 위험을 떠안는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매년 수십 명의 희생자는 통계 속 숫자로만 남을 것이다.

안전은 제도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시인 김수영은 "혁명은 언제나 시인들의 몫이다"라고 했지만, 농촌의 안전 혁명은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행정의 몫이다. 농민의 손과 발이 돼야 할 농기계가 흉기가 되지 않도록,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 우연이 아닌 안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