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그림 하나를 봤다. 초현실적인 풍경, 몽환적인 빛과 색, 익숙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
꿈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움에 한참을 바라보다가 작가 이름을 찾아봤다. 'Midjourney'.
순간 '요즘 작가는 이름도 힙하네' 하다가…아차 싶었다. 사람이 아니란다. AI란다.
그 순간 나를 감동시킨 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었다. "정말 이걸 사람이 아닌 AI가 만들었다고?" 감탄과 함께 묘한 충격이 밀려왔다.
예술은 감정의 산물이라 믿어왔는데, 감정이 없는 존재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AI가 예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이제 낯설지 않다. 나 역시 그런 질문 앞에서 멈춰 선 적 있다. "AI가 내 연주를, 내 작업을 대신하면 어쩌지?", "내가 하는 일이 앞으로도 의미가 있을까?" 나 역시 그런 질문 앞에서 멈춰 선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철학자가 되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게 만든 건 의외로 단순한 한 문장이었다. "AI가 만든 그림 앞에서, 나는 분명히 감동했다."
생각해보면, AI가 만들어낸 예술은 인간이 축적해온 감성의 데이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 철학과 감정까지 배워서 그것을 재조합해내는 존재다. 결국 AI의 그림에 감동한 나는, 돌아 돌아 인간의 위대함에 감동한 것이다. (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커피 한 잔 마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가 더 깊이 감동하고 더 멀리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그것은 연주자에게 새 악기를 쥐여주는 것처럼, 표현의 새로운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면 조연이 더 빛나는 순간이 있듯, AI는 어쩌면 예술가라는 주인공을 더 빛내주는 똑똑한 조연일지도 모른다.
AI 시대의 예술은 지식이 아닌 자존감에서 갈린다. 누군가는 초지능 앞에서 움츠러들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딛고 더 큰 상상력을 펼친다.
나는 연주자로서, 창작자로서, 이 거대한 도구를 두려워하기보다 사랑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울림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AI가 아무리 잘해도, 그 무대 위에서 마지막 박수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기계는 아무리 잘해도 무대에서 인사 못 한다. 고개도 안 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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