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입력 2025-07-02 08:00:39 수정 2025-07-02 08:41:32

[책] 마이 데스크
박미현 지음 / 미호 펴냄

[책] 마이 데스크
[책] 마이 데스크

내 첫 번째 책상은 철제로 만든 것이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무 책상이 방에 놓였다. 공부하는 용도로만 생각한 책상에 대한 시각이 바뀐 건 어느 잡지에 나온, 스위스 로잔의 집필실에서 찍은 조르주 심농의 책상을 보면서 부터였다. 가지런히 깎은 연필을 채운 연필꽂이와 스무 개 쯤으로 보이는 담배 파이프가 도열한 작가의 책상은 소우주였고, 쉼터였으며 그 자체로 작은 성이었다. 길고 넓은 책상을 향한 내 욕망의 시작점이었다.

어린 시절, 유독 책상을 좋아했던 저자는 리빙 전문 기자가 되었고, 인터뷰이로 만난 이들의 책상에 관해 언젠가 써보겠다던 마음을 실행에 옮긴다. 박미현의 '마이 데스크'는 그렇게 15년 간 인터뷰를 진행한 인물 가운데서도 꼭 엿보고 싶었던 15명의 책상 이야기, 즉 그들이 추구한 삶의 방식이 서린 책상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가 선택한 이들의 특징은 (디자인과 공간인테리어 전문가답게) 심플하고 실용적인 북유럽 가구를 선호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적인 품목을 모아 재구성해도 상당히 멋진 장면이 만들어진다. 다소 과장되게 말하자면 원목 책상 위에 어떻게 놓아도 멋진 물건들의 향연. 예컨대 몰스킨 다이어리와 몽블랑 만년필과 블랙윙 연필과 라이텍의 줄자와 보스턴 빈티지 연필깎이 같은 것들.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의자 위에 라이카 카메라가 놓이고 벽면에 목탄 크로키 한 두 점이 걸렸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책에는 다양한 책상이 등장하는데, 넓고 모던한 실내와 조화를 이룬 책상도 멋지지만 투박하고 고풍스런 공간에 놓인 책상들에 마음을 빼앗긴 건 내가 문과형 인간이기 때문일 터. 특별히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한국문화연구소 '옥인다실'의 한 평 안 되는 작업실에 놓인 이혜진 대표의 책상이다. 빼곡하게 적힌 일정과 다양한 패브릭이 너풀거리는 벽면과 조화를 이룬 아담하고 오래된 나무책상. 마치 아멜리에 방 같은 분위기가 한옥의 정취와 어우러져 안온함을 풍겨내고 있었다. 나도 이용하는 가죽공방 JE-F의 김승준 대표가 사용하는 나무 책상과, 가구디자이너 진선희 대표의 딱 지금 필요한 용품만 올려놓은 책상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어느 작업실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거칠게 말하자면 '마이 데스크'는 책상에 얽힌 사연이나 책상 위의 물건에 대한 서사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풍성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매끈하게 갈무리한 공간인테리어 참고서 같은 느낌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공장에서 뚝딱 찍어낸 게 아닌 다양한 재질과 형태를 가진 책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 공간을 점유한 책상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고, 좋은 오브제에 대한 정보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현재 사용하는 시스템 책상에 불만이 가득하던 차에 만난 이 책은 그야 말로 '나를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에 다름 아니다. 책의 첫 번째 등장하는 부부의(대구의 복합문화공간 '텀트리 프로젝트'와 '헤이마'를 만든 박재우 윤지영) 책상처럼 길고 단순하면서 멋진 3미터짜리 월넛 상판을 발견한다면 냉큼 집어올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마이 데스크'가 책상 맨 윗자리에서 끊임없이 충동질할 것임을 나는 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