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모두 역사 인식 차이 좁히려는 노력 필요하다는 자각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 핵심은 '역사 인식', '청구권 문제'
과거사(역사) 문제는 한일관계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어 발목을 붙잡는 최대 갈등 요인이다. 안보와 경제 분야의 실질 협력과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 사이에 나타나는 뒤틀림, 이것이 한일관계가 갖고 있는 딜레마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사실은 과거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는 단연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역사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출발점은 한일 양국이 역사 인식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자각 또는 인식이어야 할 것이다.

◆한일 역사문제 현황
동북아역사재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에서 39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2024년 7월 22~30일)에 따르면, 일본에 대해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은 57.3%였으나 일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5.1%에 불과했다. 일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어서'라는 응답이 51.9%로 가장 높았다.
그간 한일 과거사 문제는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강제동원 시설(군함도,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일본 교과서 기술 왜곡,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다. 그 성격은 기본적으로 '역사 인식'과 '청구권 문제' 등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사 인식' 문제의 핵심은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과 식민지 지배를 합법이라고 볼 것인지, 불법이라고 볼 것인지, 이를 정당하다고 볼 것인지, 부당하다고 볼 것인지 등으로 요약된다. 한국정부는 1951년 한일회담 시작 당시부터 일본의 한국병합은 처음부터 불법이고 무효이며 따라서 식민지 지배도 불법이라는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다. 반면 일본정부는 식민지 지배는 부당하나, 한국 강제 병합과 식민지 지배는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노무자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서도 일본정부는 피해자가 고통을 당했다는 점은 인정하나, 불법(강제) 동원 및 노동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일 정부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부당했다는 점에서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일본의 한국병합과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점에 관한 인식 차이는 원론적인 차이라 할 수 있다.
'청구권 문제'의 핵심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과 보상이 전부 해결된 것으로 볼 것인지,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견해 차이다. 일본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노무 동원 피해,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를 포함한 모든 청구권 문제를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의 한국병합이 불법이었고 따라서 당시 조선인을 동원한 근거가 된 총동원법과 징용령도 불법이었기 때문에 "조선인 동원은 불법이었고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렇듯 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견해 차이도 원론적인 차이로, 사할린 한인 귀국 지원사업 등 일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외하고는 외교 협상을 통한 의견 접근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역사 문제 인식 차이 좁히는 게 관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 사이에는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도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한일 공동선언 발표 직후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 "(공동선언이)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매듭짓고, 평화와 번영을 향한 공동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는 역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와 달리 2000년대 이후 역사 문제로 인한 한일 갈등은 늘어갔다.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사이에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이 팽배하고 한일협정체제(1965년)의 준수 여부를 둘러싼 의심과 불신도 널리 퍼져갔다. 그 근저에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의 상호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성취사관(成就史觀)과 부정적으로 보는 적폐사관(積弊史觀)의 충돌이 깔려 있다.
따라서 역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사관의 대립을 어떻게 완화하고 조정해 서로 수렴할 수 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아울러 역사 문제 논의에서 생산적인 결론을 끌어내려면 국교정상화 이후 이뤄 놓은 성과와 한계, 양국의 원론적인 견해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역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역사 인식 차이를 좁히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자각, 이것이 역사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과거사 극복 방안
과거사 극복을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서로 역사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고, 국민이 서로 어떠한 대화를 지속해 왔는지, 이룩한 성과와 과제가 무엇인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속에서 교훈과 지혜를 끄집어내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새 정부는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로 '새로운 한일 공동선언 발표'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동선언이 양국 역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으나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동북아역사재단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것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필요'(대체로+매우 필요하다) 응답이 67.9%였다. '불필요'(별로+전혀 필요하지 않다) 응답(20.7%) 대비 무려 47.1%포인트(p)나 높았다. 공동선언에 포함해야 할 내용에 대한 질문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과 '전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란 답도 그 뒤를 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달 3일 취임 한 달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같은 명확한 한일관계 설정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저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새로운 공동선언 발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정부는 정계와 학계 의견 청취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해 한일 역사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역사 인식과 관련한 정치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한일 협력관계를 정착시키 위해선 대일외교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긴박한 현실에 대한 대국민 설명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제3기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것도 역사 갈등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앞서 양국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연구 성과의 교과서 반영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바, 3기에서는 교육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동 사료집 개발 등 역사 인식 차이를 줄일 수 있고 성과 도출이 가능한 과제부터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한일역사미래공동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켜 10년 이상 활동하도록 지원하고 그 성과를 활용하는 것도 평화공영의 역사 인식 수립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현안의 법적 처리보다 역사적 처리를 모색할 수 있는 역발상 방안도 있다.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대규모 '한일 공동사업'(수백만 명 규모의 청소년 교류, 경제 공동체, 한일 해저터널, 중·고등학생 교환 수업 등)이 그것이다. 이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감으로써 과거를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청소년 시기의 역사 인식이 성년이 된 후 계속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청소년 교류 활성화도 양국의 역사 갈등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도움말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국제관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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