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서명수]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역설(逆說)

입력 2025-05-20 20:13:29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하루아침에 붕괴되지 않았다. '차베스'라는 좌파 포퓰리스트가 인기 영합 복지정책을 남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차베스의 선동(煽動)에 속은 국민들이 그를 지지하고 선택한 결과였다.

정치 지도자들은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그 배를 띄우는 물이라는 뜻)라는 말을 종종 꺼내 든다. 국민의 뜻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의 선택이 늘 현명한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국민의 선택은 '중우(衆愚)정치'로 이어지고 국가와 국민은 그 선택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국가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군주민수'의 비극적 결과다. 포퓰리스트 독재자인 차베스를 만든 것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한 국민이다. 달콤한 '무상'(無償)에 취한 국민들은 차베스가 나라를 나락으로 몰고 가는데도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했다. 차베스는 군사 쿠데타에 실패한 정치 군인이었다. 그는 투옥 후 포퓰리스트로 변신, '가난한 자를 위한 혁명'을 외치며 부자들의 재산을 약탈하듯 몰수했고, 반미 구호로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국민들은 환호했지만 국제 유가가 추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붕괴됐고 나라는 무너졌다.

베네수엘라의 실패는 차베스의 포퓰리즘도, 부패한 관료 탓도 아닌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에 따른 당연한 귀결(歸結)이다. 베네수엘라 국민 다수는 지금도 그를 '영웅'으로 기억한다. 무상 복지와 보조금의 단맛이 쉽게 잊히지 않는 탓이다. 자유보다 공짜를 선택한 대가는 치명적이었지만 그 시절이 좋았다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위기가 닥치자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반복 지급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몰락시켰다. 국가부채가 5년 만에 두 배로 증가했는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0%를 유지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예산을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고 했다.

대선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며 탈(脫)이념, 탈진영의 현실적 실용(實用)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까지 꺼내면서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념과 진영(陣營) 주의가 나라와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대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아무리 실용을 내세우고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될 수밖에 없고 '북한과 쿠바'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무상 복지와 공짜 정책은 나라의 곳간을 텅텅 비게 하더라도 '어리석은' 국민은 여전히 25만원을 준다면 기꺼이 자신의 표를 팔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한다. 자신들이 선출한 권력의 부당한 입법권 행사에는 아예 눈을 감는다. 그들의 선동에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 우리나라가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이제 우리는 어떤 배를 띄울 것인가. 국가 운명을 가늠하게 될 절체절명의 선택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민심의 거친 파도에 올라타서 한반도를 둘러싼 무역전쟁과 안보 위기의 격랑(激浪)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지혜롭고 올곧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