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박상전] 외눈박이 괴물

입력 2025-05-21 09:57:56 수정 2025-05-21 19:59:23

박상전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담당
박상전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담당

2천800여 년 전에 씌어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현재까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후 주인공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시련을 담고 있다. 후대의 철학자들은 '모든 이의 인생이 쉽지 않고, 누구든 일생에서 고통과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이 작품이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족과 대면했을 때는 누구든 간담이 서늘해지기 마련이다. 거대한 몸집과 괴력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털북숭이 외눈박이 괴물의 모습은 한반도가 청동기 시대였던 시절의 대중들에겐 더 큰 공포로 다가왔을 법하다. 현대인들은 호메로스가 왜 이 괴물을 등장시켰는지를 분석했다. 정상인과 가장 큰 특징은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는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은 보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인류에게 양쪽을 두루 관찰하기 위한 두 개의 눈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이런 외눈박이 괴물 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현재 유력 대선 후보들의 슬로건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금은 이재명 시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새로운 대한민국',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미래를 여는 선택',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차별 없는 나라' 등이다. 이를 탈(脫)외눈박이적 시각으로 뒤섞어 보면 '지금 차별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선택해야 한다' 정도로 할 수 있겠다.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선이 끝나면 낙선 후보들의 대선 슬로건은 새벽이슬처럼 사라져 버리기에, 마지막으로 기억이라도 하자는 차원에서 재구성해 봤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선거 승리 이후 새로운 대립 구도를 만들어 왔고, 선거 과정에서 부르짖던 통합과 치유는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없던 일이 됐다. 국민들의 반목과 대립이 유례없이 심화된 현실에서, 이제는 더 이상 한쪽만 부각하거나 다른 쪽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될 일이다. 새 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로 만들어서라도 각기 다른 광장으로 내몰린 우리 국민들을 한곳에 모아 새로운 국가 건설에 동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크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일'이 당연시된 시대라지만 더 이상 진영 논리에 휘말려 갈라치기에만 매진해선 안 될 일이다. 기소됐다고 검찰을 나무라고, 실형을 받았다고 법원에 손가락질하는 행태는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의 짓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수장과 소수 극렬 지지자의 칭찬 때문에 금도를 깨는 일도 다른 편에 선 유권자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차기 정부의 1순위 과제로 '경제 회복'을 꼽는 국민이 50%(지난 19일 매일경제·MBN이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가 넘는 만큼 지금 정치가 나설 일은 국가의 먹고사는 문제여야 한다.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괴물에게 포도주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창으로 외눈을 찔러 달아날 수 있었다. 괴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한쪽 눈마저 사라지게 하는 방법인 것이다. 절대 양쪽을 볼 수 없는 괴물이라면 아예 아무것도 볼 수 없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인 셈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후보자를 정밀 검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편견이나 사소한 이익은 버려야 한다. 외눈박이 국민들이 외눈박이 대통령을 만들어 주는 나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