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善終) 후 영상 메시지 하나가 공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폐렴으로 입원하기 전 세계 청소년 대상의 한 워크숍에 보내기 위해 촬영한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프란치스코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경청(傾聽)'을 꼽으며 '잘 듣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말할 때, 그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런 다음 마음이 내키면 답하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청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계 젊은이들에게 남긴 유언(遺言)과도 같은 조언(助言)이기에 그 진심과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경청, 소통에 취약하다. 세대, 젠더 불통(不通)에 여야, 노사, 의정(醫政), 그리고 최근엔 입법-사법까지 곳곳에서 갈라치기, 이해 충돌, 힘겨루기 등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난도질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정치다. 6·3 대선 과정만 봐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던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에 사실상 불복하고 정면으로 맞섰다. 초유의 일이다.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에 이성을 잃고 일방적 비난과 독설을 쏟아붓더니 '사법부의 대선 개입'이라면서 각계의 우려와 만류에도 귀 닫고 이 후보 방탄을 위한 사법부 무력화 및 삼권분립 훼손 입법을 무더기로 발의했다.
국민의힘도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심각한 소통 난맥상(亂脈相)을 드러냈다. 당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도, '반(反)이재명' 단일화를 부르짖으며 출마 선언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서로의 이해득실에 따라 자기 주장만 하다 단일화의 적기(適期)를 놓쳐 버렸다. 당 지도부 역시 선출한 후보를 허수아비 취급하며 단일화 일방 주장과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다 사태를 파국으로 내몰았다. 우여곡절 끝에 김문수호가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며 고전(苦戰)하고 있다. 있는 힘 없는 힘 다 모아도 힘겨운 마당에 '소통도 안 되는 콩가루 집안'으로는 해볼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탓이다.
앞서 불통 대통령의 몰락(沒落)도 생생하게 지켜봤다. 불통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지 목도(目睹)했다. 정치적 소통은 부재(不在)했고 야당과의 협치(協治)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극단의 정치에 매몰됐다. 대통령실 등 내부의 직언(直言), 고언(苦言)도 호통으로 내쳐 감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소통, 논의 없는 국무회의를 열고는 비상계엄을 강행했고, 결국 탄핵과 파면으로 끝났다. 민주당도 파국(破局)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소통, 협치 노력 없이 거대 정당의 힘만 과시·남발하며 대통령, 정부, 여당을 대놓고 무시했고 국정 발목 잡기와 입법 폭주로 이들을 벼랑으로 내몬 사실상 공범이다.
정치는 소통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정치인, 국가 지도자라면 결단과 고집도 있어야 하고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본은 소통이다. 경청이 바탕이 되지 않은 결단, 고집, 추진력은 방향을 잘못 잡는 순간 위험한 흉기가 될 수 있다. 대선이 2주 남았다. 유력 후보들의 면면을 볼 때 누가 되더라도 '소통의 정치'를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통 지도자의 선례(先例)를 전철(前轍) 삼아 경청, 소통의 정치를 펼쳐 갈라지고 도태(淘汰) 위기에 놓인 이 나라를 다시 바로 세워 주길 바란다.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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