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보니 행복이다] 김종명·배정란 부부 "돌봄공동체 만들어 육아, 교육 함께 하죠"

입력 2025-06-19 12:56:41

육아공동체로 시작한 '노는엄마들'..청년공동체·문화기획 앵커 조직으로 진화
공적 돌봄 시스템 공백 메워줄 공동육아 커뮤니티 지원 확대 필요

다섯 식구가 사는 집 밖에는 산과 들이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다섯 식구가 사는 집 밖에는 산과 들이 정원처럼 펼쳐져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북 청도군에서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청도반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돌봄공동체인 '노는엄마들'이 청도의 성공적인 공동육아 모델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노는엄마들의 회원 수는 현재 총 10명으로 평균 자녀 수는 2.6명이다. 저출산 시대, 지역 소멸 위기에 있는 농촌지역에서 고무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노는엄마들의 대표인 배정란(40) 씨는 "높은 출산율의 비결은 공동 육아 커뮤니티를 만들어 엄마들이 함께 육아와 교육, 문화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처음에는 공동육아 공동체였지만 점차 엄마들을 위한 청년공동체로 발전했고 현재는 임의단체격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기획을 하는 앵커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 대표 또한 자녀 셋을 둔 다둥이 엄마다. 첫째는 남성현초등학교 1학년 소민(8), 둘째 남성현초 공설유치원생 보민(6), 셋째 청도어린이집 원생 로아(3) 등 모두 딸아이들이다.남편 김종명(40) 씨는 청도군의회 정책지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다섯 식구를 품은 집 마당에서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와 첫째 소민, 둘째 보민, 셋째 로아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다섯 식구를 품은 집 마당에서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와 첫째 소민, 둘째 보민, 셋째 로아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30대 초반에 서울에서 청도로 귀향하다

김종명·배정란 부부는 서울에서 살다 2016년 경북 청도군으로 귀향했다. 청도는 남편의 고향이다. 둘은 서울에서 각자 직장생활을 하다 만났고 2014년 결혼해서는 '50대나 은퇴 후 귀향'이라는 당초 계획을 앞당겨 결혼 2년 만에 빠른 귀향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그 즈음 남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달아 돌아가시고 청도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만 남은 상황이었다.

배 대표는 "K-장남인 신랑 입장에서는 부양에 대한 책임감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고, 제 경우는 난임 소견을 받은 터라 스트레스 없는 환경을 갈망해 청도행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빨리 갖고 싶었던 그는 생각대로 되지 않자 난임병원을 찾았고 '원인 불명의 난임'이라는 소견을 받게 된다. 원인 불명이라고는 하지만 학계에서는 주로 환경적인 요인(스트레스)이 문제가 돼 난임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부부는 '청도에 내려가서 직장 스트레스 없이 살면 아이가 생길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됐고 때마침 청년 농부, 청년 창업농에 대한 정부 지원과 혜택이 생긴 터라 할어버지가 남겨놓은 밭에서 청도반시나 사과 농사를 지을 계획으로 청도로 내려오게 됐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운명은 이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본인의 일을 하겠다던 남편은 청도군의회 정책지원관으로, 아내는 청도지역 육아맘들로 구성된 청년 공동체 '노는엄마들'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2세 부분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귀향 6개월 만에 첫 아이를 가진 데 이어 지금은 셋째까지 둬 다섯 가족 단란한 일상을 일궈가고 있다.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가 집 마당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가 집 마당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육아맘끼리 뭉치다..공동육아 커뮤니티 '노는엄마들' 결성

'노는엄마들'의 시작은 한 플리마켓 주민기획단에 3040 비슷한 또래의 육아맘들이 참여하면서다. 당시 8명의 육아맘들은 플리마켓을 준비하며 아이들까지 동반해 자주 만났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또 없을까' 하는 고민을 공통으로 하게 됐다. 당시 행정안전부의 청년공동체활성화 지원사업이 있었기에 노는엄마들로 단체 등록을 하고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쳐갔다.

노는엄마들의 모토는 '엄마들이 행복해야 아이도, 가정도 행복하다'다. 아이들을 시골에서 잘 노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던 이들은 그러려면 엄마부터 잘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는엄마들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인 것이다. 이후 이들은 공동육아 공동체를 형성하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교육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 올해는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그림책, 요리, 목공, 체육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배 대표는 "아무래도 청도는 사교육 시장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운영하는 공동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아이도 좋아라 하고 부모도 만족해한다"며 "독박 육아가 아닌 함께 어울려 즐겁게 하는 육아라야 아이도 낳고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는엄마들은 단순한 육아 공동체 모임이 아니라 지역의 인구소멸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청년들의 터전을 만들어가기 위한 차원"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가족공동체 문화, 청년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와 첫째 소민, 둘째 보민, 셋째 로아 등 다섯 식구가 집 마당에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김종명·배정란 씨 부부와 첫째 소민, 둘째 보민, 셋째 로아 등 다섯 식구가 집 마당에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현대는 마을이 아닌 관심 공동체 통해 공동 육아

남편 김종명 씨는 "결혼 후 서울에 계속 살았더라면 지금과 같이 애 셋은 못 낳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은퇴 후 살려고 마을 맨 안쪽에 지은 것인데 아이들에게는 천국 같은 환경이다. 도시에서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층간소음 때문에 맘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조심조심 스트레스 받으면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마당에는 미끄럼틀도 있고 집 안에서 답답하게 놀지 않아도 되니 아이들 정서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청도에 일찍 내려오길 참 잘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종명·배정란 부부의 평일 일상은 아이 키우는 여느 집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아이들 픽업을 아내와 남편이 분담하고 저녁에는 밥 먹고 애들 씻긴 후 자는 식이다. 하지만 금요일은 평소 풍경과 사뭇 다르다. 노는엄마들이 진행하는 마을교육공동체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라, 오후 4시 반쯤 엄마와 아이들은 수업에 참여하고 끝난 후에는 저녁 식사까지 함께 한 후 귀가한다.

토요일 오전에는 첫째와 둘째의 국악 수업이 있다. 두 아이는 온누리국악예술단 키즈 단원이다. 이 수업은 개인 돈으로 하는 사교육이지만 청도에서 수준 높은 국악 수업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고 있다. 온누리국악예술단 대표도 노는엄마들 회원이다. 국악 수업이 끝나면 점심 무렵인데 대부분 다 함께 밥을 해 먹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오후에도 애들끼리 놀도록 놔 두는 편이다.

일요일에는 5월부터 큰 아이만 초등학생 승마 수업을 받는다. 10회에 30만원이 넘는 수업이지만 군 지원사업이라 9만원만 내고 오전 10시부터 1시간 정도 승마 교육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때때로 세 아이를 데리고 청도도서관에 간다. 밀양이나 대구의 야외 놀이터, 박물관 등으로 놀러 가기도 하는데 주말에는 거의 집에 있지 않고 바깥 나들이를 즐기는 편이다.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다 친한 편이라 노는엄마들 멤머들 집도 서로 스스럼없이 오간다.

배 대표는 "사실 셋째를 낳으면서 가장 많이 도움을 받은 건 노는엄마들 공동육아 커뮤니티"라며 "각 지역마다 이런 돌봄공동체가 활성화돼 공적 돌봄 시스템(보육기관)의 공백을 사람이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지자체 차원에서는 임신한 순간부터 동네 친구를 만들어주고 서로 육아, 교육의 힘든 점을 도와주는 커뮤니티 지원도 많이 해주길 바란다"며 "무엇보다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의 경우 방학이 진짜 문제인데 방학 때 아이들을 맡아 챙겨줄 센터, 공동체 등에 지자체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남편 김종명 씨도 "예전에는 마을에서 한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 같이 마을에서 뚝 떨어져 사는 경우도 있고 또 도시에 사는 이들은 서로 교류가 없어 마을 개념을 현대에 맞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부락이 아닌 또래나 관심 공동체 등과 같은 새로운 공동체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둥이를 키우면서 정부 또는 지역사회에 바라는 점은 금전적인 지원(출산지원금 등) 보다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생활 편의성을 제공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어딜 가든 프리패스로 입장을 도와준다거나 전기세, 수도세, 난방료 지원을 좀 더 해주면 좋겠다는 게 주변 다자녀 가정들의 공통된 바람이라고 배 대표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