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예술 순례] 천지 창조에서 최후의 심판까지-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입력 2025-05-06 14:59:42 수정 2025-05-06 16:11:18

박미영 시인

미켈란젤로가 1512년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 천장화. 가운데 야훼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 오른쪽 흰 수염이 노인 모습의 유일신 야훼다. 매일신문 DB
미켈란젤로가 1512년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 천장화. 가운데 야훼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하는 장면. 오른쪽 흰 수염이 노인 모습의 유일신 야훼다. 매일신문 DB

콘클라베가 시작됐다. 지난 4월 22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 후 보름 만이다. 청빈과 포용을 강조한 교황에 대한 추모 열기는 뜨겁고 약자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그의 빈자리는 참으로 쓸쓸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콘클라베의 흰 연기를 우리는 또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성당은 바티칸의 교황 관저인 사도궁전에 속해 있고, 1481년 그 이름의 유래인 식스토4세의 명으로 완공됐다. 건물은 예루살렘 솔로몬신전을 본떴다. 중세엔 교황이 이곳에서 직접 미사를 집전했고, 유사시엔 요새가 됐다가 감옥으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성당 내부 측면의 벽화는 당시 교황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가 로마로 파견한 보티첼리, 페루지노, 기를란다요, 로셀리 등 르네상스 거장화가들과 조수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창문 양쪽 역대 교황 32명과 남벽과 북벽 예수와 모세의 일생 12점이 그들의 작품이다.

천장화는 원래 다멜리아가 그린 금색 별과 짙푸른 하늘이었다. 그러나 배수 문제로 누수와 균열이 생겨 덧칠을 해도 여의치 않자 1508년 율리오2세는 천장화 제작을 하라 자신의 영묘(靈廟) 장식 조각 중이던 미켈란젤로를 불러들였다. 이미 이십대 초반에 피에타와 다비드 조각상으로 다빈치와 함께 희대의 천재로 추앙 받던 서른세 살 청년은 자신을 시기한 베드로성당 건축가 브라만테의 농간으로 여겨 교황의 명령을 강력히 거부했다.

미켈란젤로는 유화가 아니라 회(灰)반죽이 마르기 전에 채화를 해야 하는 프레스코화 작업을 그때까지 해본 적도 없다며 슬며시 라파엘로에게 미루기도 했지만, 교황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예술가들과의 비교를 거부하는 위력의 천재답게 그는 성당에 설치된 18미터 비계(飛階)에 누워 343명에 달하는 군상을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완벽하게 그려냈다. '천지 창조'였다.

3년 남짓 걸려 완성한 천장화의 중앙을 9등분해 창세기(빛과 어둠, 식물과 해와 달, 땅과 물, 아담, 이브의 창조, 아담과 이브의 추방, 노아의 제사, 대홍수, 만취한 노아)를, 그 좌우 바깥으로 그리스신화의 무녀(델포이, 쿠마이 등), 성서의 예언자(예레미아, 이사야 등), 그 사이 스펜드럴(뾰족한 삼각 모양)과 루네트(잘린 원 모양)에는 예수의 선조, 네 귀퉁이에는 유디트, 에스더 등 이스라엘민족의 구원 장면을 그렸다.

천지 창조에서 신과 손끝으로 교감하는 아담의 창조 장면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가 비계에 누워 세밀하게 그린 도토리와 조개껍질이 그려진 액자 틀과 모퉁이마다 이뉴디라 불리는 20명의 누드상, 방패 모양이 부조된 청동 메달리온들은 실제로 시스타나성당에선 천장도 높고 관람객들에게 떠밀려 육안으론 거의 볼 수 없다. 미리 도판(圖版)으로 보고, 돌아와 다시 원화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 좋다.

예수 그리스도. 1541년 미켈란 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가운데가 예수 그리스도. 매일신문 DB
예수 그리스도. 1541년 미켈란 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가운데가 예수 그리스도. 매일신문 DB

늘 자신이 조각가로 불리길 원했던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완성한 후 피렌체로 돌아가지만 1533년 메디치가문이 배출한 두 번째 교황 클레멘스7세에게 다시 로마로 불려와 제단 벽면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된다. 베드로대성당의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발부한 면죄부(면벌부)와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의 로마 침공 등으로 가톨릭에서 멀어진 민심을 모으기 위한 교황청의 반종교개혁 의지였다.

최후의 심판은 궁극에는 벌거벗은 채 신의 심판과 구원을 기다려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그린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한 중앙에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 골고다의 십자가를 비롯한 예수의 수난 도구를 화면 상단에 그렸다. 축복 받은 이들과 성인들, 심판의 나팔을 부는 천사들, 구원 받은 이들과 저주 받은 이들, 부활하는 죽은 영혼들과 지옥의 입구에 선 자들로 4등분해 총 면적 167.14㎢의 벽면에 음울하고 비극적인 391명의 군상을 역동적으로 그렸다.

천국과 지옥, 심판의 순간이 단테의 신곡처럼 표현된 위대한 벽화 앞에서 사람들은 전율했다. 하지만 신성해야 할 성당 제단화 속 인물이 온통 나체였다. 불경하다며 온 유럽이 들끓었다. 처음엔 거장의 카리스마로 꿋꿋이 버텼으나 결국 20여 년 후 교황청은 공의회를 열어 가능한 한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기'로 했다.

그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고 덧칠은 다른 사람이 했다. 예수 바로 아래 순교자 바르톨로메오가 왼손에 든 자신의 벗겨진 살가죽에 미켈란젤로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 그려져 있다. 18세기 말까지 이어진 덧칠과 촛불로 인한 그을음, 먼지, 누수로 계속된 최근의 복원. 현재 우리가 보는 최후의 심판은 그리하여 지나치게 화려해진 것이라 한다. 성당의 이 그림들 아래 진짜 커튼처럼 드리워진 트롱프뢰유의 뜻은 '지독한 눈속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