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탈출은 지능순"이라며 떠나는 9만명…점유율 1위에 무슨 일이

입력 2025-05-01 10:04:23

유심 교체 대란에 연락처·교통카드 오류까지…불편에 뿔난 가입자들

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SK텔레콤 로밍센터에서 출국자들이 유심 교체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SK텔레콤 로밍센터에서 출국자들이 유심 교체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심(USIM) 해킹 사고로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은 SK텔레콤이 사태 발생 2주 차에 접어들며 대규모 고객 이탈이라는 후폭풍을 맞고 있다. 사고 초기 미흡한 대응과 뒤늦은 사과, 정보 전달 부족이 겹치면서 통신 시장 점유율 1위 사업자의 위상에 금이 가는 모양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해킹 사고가 알려진 지난달 22일부터 최근 일주일간 SK텔레콤에서 KT와 LG유플러스로 통신사를 옮긴 번호 이동 이용자가 약 9만 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타사에서 SK텔레콤으로 유입된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순감 규모는 6만 명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3월 한 달간 SK텔레콤의 순감 수치(약 1600명)와 비교하면 37배 이상 급증한 셈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대형 통신사가 위기 상황에서 고객 신뢰를 어떻게 잃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피해 사실을 인지한 시점과 대국민 공지 시점 간 시간차, 늦장 대응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여야는 지난 30일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SK텔레콤의 초기 대응에 대해 일제히 질타했고,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SK텔레콤은 3월 18일, 내부 시스템에서 유심 관련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을 처음 포착했다. 그러나 언론에 이 사실을 공개한 것은 나흘 뒤인 22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직접적인 통지가 아닌, 자사 홈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T월드)을 통해 조용히 사과문을 게시하는 방식으로 초동 대응을 마쳤다. 이 같은 소극적 알림 방식은 '뉴스에서 내 개인정보 해킹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소비자 반응으로 이어졌다.

고객 대상 문자 안내는 다음날인 23일부터 본격화됐지만, 서버 과부하를 이유로 분할 발송되면서 전체 2300만 가입자에게 전송이 완료되기까지 일주일이 소요됐다. 이 사이 국내 주요 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은 자사 임직원들에게 유심을 교체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등 민간·공공 부문에서 자체 대응에 나섰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25일 직접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든 고객에게 무료 유심 교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고객 이탈은 가속화되는 중이었다. 게다가 발표 당시 확보된 유심 재고는 약 100만 개 수준으로, 전체 가입자의 4%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28일부터 전국 대리점에는 이른 아침부터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는 등 '유심 대란'이 발생했고, 일부 매장은 개점과 동시에 교체 물량이 소진되기도 했다.

기술적 조치 위주의 대응 또한 고객 혼란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유심을 교체한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는 "연락처가 삭제됐다", "모바일 교통카드 잔액이 0원이 됐다"는 불만이 연이어 제기됐다.

유심 교체 시 예상 가능한 문제였음에도 SK텔레콤은 별도의 안내 없이 기술 보호 서비스 중심의 공지만 반복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고객들은 이러한 주의사항을 언론 보도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킹 사태 이후 SK텔레콤을 이탈한 이용자들이 잇따르자, 한 이용자가 "SKT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표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글은 "언론보다 먼저 문자 한 통 보내줬다면 이렇게까지 됐겠냐", "2300만명 개인정보 털렸는데 '괜찮다'고만 반복하는 게 말이 되냐"며 SK텔레콤의 대응을 비판하는 댓글들과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SK텔레콤이 사과문에서 "주민등록번호나 계좌정보 등 민감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강조한 점도 고객 불안을 해소하기보다는 안일하다는 인상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제폰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유심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은 최근 내사 단계를 마치고 정식 수사로 전환했으며, 해킹 경로와 배후 세력에 대한 분석에 착수했다. 수사당국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를 투입해 해킹에 사용된 수단과 경유지를 추적하는 동시에, 해외 기관과의 공조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