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 선산주조 대표 "구미의 역사, 전통주에 담았죠" [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입력 2025-04-09 14:25:10 수정 2025-04-10 23:21:17

'경북 구미 선산김씨 500년 가양주' 만드는 선산주조 김 대표 인터뷰
30대 초반 청년 4명이서 2022년 창업…"구미도 안동처럼 선비의 도시, 전통주 역사 깊어"
2024년 대한민국 주류대상서 생막걸리부문 대상 수상…대구더현대, 대구신세계서 팝업스토어 활발
"막걸리 대표 아이콘 되고 싶어…양조장과 숙박시설 만들어 구미 관광 활성화하는 것도 꿈"

30대 초반 청년 4명이 구미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 브랜딩한
30대 초반 청년 4명이 구미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 브랜딩한 '선산주조'는 경상도 선산군 선산김씨 500년 가양주를 만들고 있다. 지난 7일 경북 구미에서 선산주조 김성식 대표를 만났다. 한소연 기자

상업도시의 색채가 강한 경북 구미도 안동처럼 전통과 역사가 유구한 도시다. 1413년(태종 13)부터 1995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설치됐던 행정구역이 '선산'이다. 일선(선산) 김씨의 집성촌이고 '김종직' 등 인재가 배출된 영남 인물의 보고다.

30대 초반 청년 4명이 이러한 구미의 역사와 전통을 담은 전통 술을 알리기 위해 뭉쳤다. 경상도 선산군 선산김씨 500년 가양주를 만드는 '선산주조'다. 제품 출시 1년 만인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생막걸리부문 대상을 받기도 한 선산주조 김성식(32) 대표를 지난 7일 경북 구미에 위치한 선산주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선산김씨 500년 전통의 가양주를 만드는 회사라고 해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대표도 젊고, 로고도 트렌디해서 놀랐다.

▶4명이서 같이 하고 있는데 모두 전통술을 사랑하는 3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선산주조의 주소비층도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이다. 막걸리에 전통성과 모던함을 모두 담아 힙해지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때 '범내려온다'를 부른 이날치 밴드는 정장에 갓을 쓰고 나왔다. 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원소주도 영어지만 자개무늬를 넣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어른들이 보면 그냥 막걸리인데 젊은층들로 하여금 '색다르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막걸리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와인, 사케 등 수입 고급 술과 싸우고 싶었다.

선산주조는 막걸리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우고 있다. 젊은층들로 하여금
선산주조는 막걸리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우고 있다. 젊은층들로 하여금 '색다르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선산주조 홈페이지

-원래부터 막걸리 사업을 하려고 했던 건가?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서 2018년 서울의 한 로펌 대표 변호사의 비서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가 25살이었다.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업무가 맞지 않았고, 동시에 집안이 송사에 휘말리는 등 혼란한 시기를 맞았다. 직접 재판 준비를 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 두고 다시 구미로 내려오게 됐다.

-로펌에 다니다가 어린 나이에 사업에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서울에 있을 때 브랜드 대표들을 정말 많이 봤다. 그때 어렴풋이 '나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 두고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다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카페가 아니라 상징적인 공간이지 않나. 약속 장소이기도 하고 학습 공간이기도 하고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로 직접 보면서 스타벅스가 위생이나 영업 측면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배웠다. 스타벅스처럼 하나의 상징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선산주조는 막걸리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우고 있다. 젊은층들로 하여금
선산주조는 막걸리가 가진 서민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우고 있다. 젊은층들로 하여금 '색다르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선산주조 홈페이지

-그런데 왜 하필 술인가?

▶한국은 전통술이 기본적으로 집에서 만드는 '가양주'에 뿌리를 둔다. 나의 외가는 감사하게도 옛 선조들이 물려주신 것들을 최대한 잘 보관하고 있었다. 외숙모가 항상 예로부터 전해내려 온 레시피로 막걸리를 담갔다. 그런 것을 보면서 구미만의 전통술을 상업적으로 브랜딩해보고 싶었다. 2018년 초부터 외숙모한테 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까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이야기를 했듯, 전통주는 젊은층들 사이에서 이미 수요가 높다.

▶맞다. 차별점이라면 구미의 역사를 담았다는 거다. 역사와 함께 가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리타분한 전통술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아까 말했듯 나는 내 막걸리를 와인과 사케와 싸우게 하고 싶다. 한국 막걸리는 와인이나 사케 같은 수입 술과 비교했을 때 품질은 훨씬 좋지만 서민 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걸 탈피하려고 막걸리 고급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막걸리 고급화 전략이라면?

▶우선 막걸리의 맛을 다양하게 만들어 출시하는 거다. 막걸리는 누룩을 어떻게 쓰느냐, 몇 번 담그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현재 시판되는 막걸리 대부분이 대량생산과 품질 균일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맛이 다 똑같다. 그런데 누룩 등을 이용해 막걸리의 맛을 다양화하는 전략이다.

두번째는 유리병을 쓰는 전략이었다. 소비자들이 봤을 때 최대한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포장에도 정성을 들였다. 서울 인사동에서 수공예한 보자기로 고급스럽게 포장을 해서 판매한다. 직접 포장한다. 이번 팝업에도 3천병 정도 포장했다.

30대 초반 청년 4명이 구미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 브랜딩한
30대 초반 청년 4명이 구미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 브랜딩한 '선산주조'는 경상도 선산군 선산김씨 500년 가양주를 만들고 있다. 지난 7일 경북 구미에서 선산주조 김성식 대표를 만났다. 한소연 기자

-청년 4명이서 만들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선산주조를 만들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투잡, 쓰리잡을 뛰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 그때 만난 인연들이다. 창업 준비를 하면서 LG이노텍과 쿠팡 등에서 일을 했다. 우리나라 기업 구조상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하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하던 사람들이다. 그게 인상 깊어서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거다.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니 대단하다.

▶원래 대학생 때도 등록금은 내가 벌어 내겠다고 하는 성격이었다. 쿠팡은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약 2만개의 택배를 배달하는데 무릎에 물혹이 찰 정도로 고됐다. 일이 끝나면 술 상태 체크하려고 양조장에 출근했다. 차에서 쪽잠자고, 차에서 밥먹고 지냈다. 몸이 너무 망가지는 것 같아 쓰리잡까지는 포기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2022년 9월 사업자를 내고 다음 해에 선산주조 막걸리가 첫 판매가 됐다.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까지 선산주조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먼저 첫 직장 생활의 실패를 만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두 번째는 선산이 안동 만큼이나 역사적 맥락과 배경이 깊은 곳이다. 구미 출신의 유명한 분들도 많다. 내 고향인 구미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내 말에 설득력도 없더라. 구미의 장점을 모아서 선산주조 막걸리라는 하나의 제품으로 실현하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말로는 증명이 안 되는데 물리적인 것으로 증명을 하려면 할 수 있지 않나.

구미 청년들이 만든 막걸리 브랜드 선산주조의
구미 청년들이 만든 막걸리 브랜드 선산주조의 '선산 오리지널이 2024년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수상헸다. 구미시 홈페이지

-그렇게 노력한 결과 지난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생막걸리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상을 수상하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를 것이 없는데 상을 탔다는 이유로 좋게 봐주시더라. 대상을 받은 '선산 오리지널'은 7만원대다. 선산주조 제품 중에서도 가장 고가다. 대표 서민술인 막걸리 중에서도 서민적이지 않은 가격의 막걸리가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맛이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은 뜻 같아 뿌듯하다.

-일반 막걸리랑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한데.

▶대상을 받은 '선산 오리지널' 농주를 오마주해서 만든 술이다. 농주는 농사일에 쓰이는 술이라 대충 걸러 만들어져서 다른 막걸리보다 꾸덕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팝업 스토어에서 시음을 하면 5060대 분들은 '우리 엄마가 해주던 막걸리 맛과 비슷하다'고 좋아하신다.

-팝업 이야기가 나왔다. 3월 한 달동안 더현대대구, 대구 신세계에서 팝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셨다.

▶울산과 대구 백화점 등에서 3월 내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판매도 판매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5월부터는 서울 잠실 롯데타워에서 팝업을 시작한다. 현대백화점 충청점에서도 팝업을 연다.

최근 선산주조는
최근 선산주조는 '왼손으로 그린 기린 그림'(왼그기그)와 협업한 막걸리를 출시했다. 선산주조 인스타그램 캡처

-선산주조도 3년 차다. 돌아보면 어떤가.

▶7년을 앞만 보고 달린 것 같다. 올해는 매출도 10억으로 끌어올리고, 일본,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4개국에 수출을 하는 게 목표다. 일본에는 곧 제품을 수출할 예정이다. 왼그기그와 협업한 막걸리도 또 새롭게 출시될 예정이다. 정성적인 목표인데, 선산주조의 막걸리가 매대에 없으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막걸리 대표 아이콘이 되고 싶다.

-앞으로 사업적으로 하고싶은 것이 있나.

▶공간에 대한 부분이다. 한 쪽에는 양조장을 만들고 다른 한 쪽에는 숙박시설을 만드는 거다. 구미에 머무르게 하면서 양조장 체험도 하고 다른 구미의 모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방소멸이라고 하지만 지역에는 누군가가 남아서 이 전통을 이어가고 또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고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