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욱의 대구문화 오디세이] 대구 영역의 변천史

입력 2025-03-16 13:03:49 수정 2025-03-16 18:57:15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 영남의 중심에서 대한민국 최대 광역시로

달구벌로 불리던 시기, 대구의 영역은 달성토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다. 달성토성은 달성공원의 옛 이름으로 여러 개의 낮은 능선과 계곡을 연결하여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성이다.
달구벌로 불리던 시기, 대구의 영역은 달성토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다. 달성토성은 달성공원의 옛 이름으로 여러 개의 낮은 능선과 계곡을 연결하여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성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삶터

대구지역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로 볼 때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2006년 달서구 월성동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은 약 2만 년 전의 후기구석기 유적이었으며 2017년 달성군 하빈면 감문리에서의 구석기 유적 발굴은 대구지역에서 생활의 역사를 중기구석기인 5~7만 년 전까지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5천 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들이 서변동과 상동, 대봉동 등지에서 발굴되었는데 대표적 신석기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기념물인 고인돌(지석묘)도 금호강과 신천, 팔거천과 진천천 유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이처럼 대구는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지역이었다.

대구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대구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삼국시대, 달성토성 축조

예로부터 대구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려왔다. 달구벌로 불리던 시기, 대구의 영역은 달성토성(達城土城)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다. 달성토성은 달성공원의 옛 이름으로 여러 개의 낮은 능선과 계곡을 연결하여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성이다.

사적 제62호인 달성토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1.3㎞이고, 내측 높이는 4~7m 내외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261년 2월에 대구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奈麻) 극종(克宗)을 성주(城主)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달성토성은 달구벌을 상징하는 역사적 공간이자 성곽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신라시대, 새로운 기회의 땅

5세기경에 달구벌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에 대구는 신라 수도 경주의 서쪽 관문이었다.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그 중요성이 커지면서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대구)로 옮기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89년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이 수도를 달구벌 즉 대구로 옮기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 수도를 대구로 옮기려 한 사실로 보아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이자 농업 생산력 등에서 당시 대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王이 수도를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王欲移都逹句伐, 未果) -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 8

경상감영공원에 있는 1900년대 선화당.
'대구' 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기록(대구교육박물관)

이후 757년 경덕왕 때에, '달구화현'이라는 이름이 '대구현'으로 바뀌면서 '대구'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대구현의 한자 표기는 '大丘'였다. 대한민국 3대 도시 대구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참고로 대구 지명은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6개 광역시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지명이다.

◆ 고려시대, '경상도' 지명 탄생

영남지방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인 경상도란 지명은 고려시대 때 지어졌다. 당시 지명 형성은 가장 번영했던 지역 이름의 앞 글자에서 하나씩 따왔다. 경상도는 국토 동남부 지역의 큰 도시였던 경주의 "慶"자와 상주의 "尙" 자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다. 경상도 명칭의 유래가 된 경주와 상주가 모두 경상북도에 있는 걸 보면 당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지명 만들기는 조선 8도의 다른 지역에도 적용되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를 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경상도는 문경새재로 유명한 소백산맥의 조령 남쪽, 즉 령(고개)의 남쪽이라는 의미에서 '영남(嶺南)'으로 불린다.

경주 「慶」 + 상주 「尙」 = 경상도(慶尙道) 고

경상도읍지(1800~1834)에 수록된 대구부 지도
경상감영공원에 있는 1900년대 선화당.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설치된 영남의 중심

조선의 건국으로 대구는 그 위상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금호강과 낙동강 유역을 끼면서 농업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되면서 세종대왕 때는 '대구현'에서 '대구군'으로, 또다시 세조 때에는 '대구도호부'로 격상되면서 행정적, 군사적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조선시대의 경상도 지역은 지금처럼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때까지 오늘날의 도청이라고 할 수 있는 경상감영이 수시로 상주와 경주, 안동 등으로 분할되다가 합치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1601년에 경상도 전체의 행정과 사법, 군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하게 된다.

이때부터 대구는 경상도 전체를 총괄하기 위한 감영(監營), 대구도호부 자체를 관할하는 부아(府衝), 그리고 대구진관의 군사행정 조직인 진영(鎭營) 등 삼원적(三元的)인 행정체계가 수립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영남 중심지가 된다. 금호강은 물론 낙동강 유역까지 아우르면서, 정치・경제 등 전반적 분야에 걸쳐 대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철종 이후에 대구의 구(丘)가 공자의 이름인 공구(孔丘)의 구(丘) 자와 같다고 하여 大丘에서 大邱로 한자 표기가 바뀌게 되었다. 丘(구) 자와 邱(구) 자는 둘 다 언덕을 뜻하는 한자다.

대구직할시 승격기념 현판식.매일신문 DB
경상도읍지(1800~1834)에 수록된 대구부 지도

1871년 영남읍지(嶺南邑誌)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부는 수성과 다사, 하빈과 화원 그리고 가창과 청도 풍각 지역까지를 포괄하는 경상도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896년 경상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눠지게 되었다. 이때 대구가 경상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된 것이다.

◆현대, 글로벌 내륙도시

1945년 광복이 되고 4년 후인 1949년에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드디어 대구부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인 대구시로 불리게 된다. 1980년 4월 1일, 동구 관할구역 중 남쪽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수성구를 신설했다. 그 남쪽의 일부 지역은 현재의 수성동 4가와 범어3동 등이 포함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현판 제막식.
대구직할시 승격기념 현판식.매일신문 DB

대구지역이 행정 단위 명칭으로 대구직할시로 지칭된 것은 1981년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경상북도에 속한 대구시였다. 1981년 7월 1일부터 6개 구를 보유한 직할시로 승격되었고, 1988년에는 달서구를 신설하여 7개 구를 보유하게 되었다.

지방자치제의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중앙집권적 의미를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1995년 1월 1일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을 대구광역시에 편입, 산하 기초자치단체로 두게 되면서 도농복합도시가 되고 관할 행정구역은 8개 구·군이 되었다.

대구광역시지도
대구광역시 현판 제막식.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광역시지도

2023년 7월 1일, 군위군의 편입으로 대구는 중구를 비롯해서 동·서·남·북구와 수성구·달서구·달성군·군위군 등 9개 구·군에 모두 150개의 읍면동을 보유하게 되었다. 면적은 1,499.47㎢로 인천(1,065.23㎢)과 울산(1,066.09㎢)은 물론 부산(770.07㎢)을 능가한다. 서울(605.23㎢)보다는 두 배 이상 큰 규모로 대한민국 특별시와 광역시 중 최대 규모의 도시로 변모했다.

대구시는 글로벌화 차원에서 10개국 12개 도시와 자매도시 결연, 8개국 15개 도시와 우호협력도시 협약 등 국제교류도 다각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통한 '메가시티'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