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억압…"한족 국가로 시작" 주장 온갖 역사 공정
中, 19세기 말까지 하·상·주 중 주(周)만 실존 왕조로 여겨
상(은) 20세기 초 실존 드러나
◆중국의 여러 역사 공정
중국 답사 가서 TV를 켜면 어느 채널인가에서는 늘 과거 중국 공산당이 일본군과 싸우는 드라마를 방영한다. 일본군과 최전선에서 싸운 것은 공산당이 아니라 국민당이었지만 중국 공산당은 중일전쟁을 자신들이 주도했다면서 집권의 가장 큰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근현대사뿐만 아니다. 최근 필자가 속해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는 이른바 중원이라 불리는 중국 내륙을 한 바퀴 도는 역사답사를 진행했는데 거의 매일 TV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유물들에 관해 방영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대부터 위대했던 중국역사가 중국공산당 집권이라는 번영기를 만났다고 선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국사가 위대하다고 강조하다 보면 주변의 민족이나 국가들의 역사와 충돌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되었던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우리는 고조선은 말살하고 부여·고구려·발해(대진)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에 대해서 분노했지만 이는 중국이 그 전부터 진행했던 수많은 역사공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중국은 그 전에 이미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란 역사공정을 진행했다.
단대(斷代)란 시대를 구분한다는 뜻인데 주로 왕조별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뜻한다. 하(夏)·상(商)·주(周)는 공자가 삼대(三代)라고 높였던 고대시기인데,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약 200여 명의 전문가가 참가해 역사를 만들었다. 중국이 국가 권력차원에서 '하상주단대공정'을 진행한 이유는 전설상의 왕조였던 하(夏)의 역사를 실존했던 역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19세기 말 드러난 은허(殷墟)
중국은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하·상·주 중에 주(周)만 실존 왕조로 여기고 상(商=은)도 전설상의 왕조로 여겼다. 19세기 말 우연히 은(殷)이 실존왕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899년 국자감 좨주를 역임했던 왕의영(王懿榮)이 병에 걸리자 가족들이 북경 한약방에서 용골(龍骨)이라는 약재를 사가지고 왔다. 용골은 주로 거북의 껍질이나 소의 어깨뼈를 뜻하는데 왕의영은 용골에 한자(漢字) 비슷한 기호가 쓰여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한자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용골이 곧 갑골문이었다. 왕의영은 1900년 의화단 운동 진압을 명목으로 영국을 비롯한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순국 자결했다.
북경의 한약방들은 갑골문의 출처를 비밀에 부쳤지만 왕의영의 뒤를 이은 나진옥(羅振玉) 등의 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해 그 출처가 하남성(河南城) 안양시(安陽市) 소둔촌(小屯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드디어 국학대사(國學大師)로 불리던 왕국유(王國維)가 이 지역이 은의 수도였던 은허(殷墟)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28년 중국 중앙연구원 어언(語言)연구소 소장 부사년(傅斯年)의 지원 하에 동작빈(董作賓) 등이 발굴에 나서 800여 편의 갑골문과 동기(銅器), 도기(陶器), 골기(骨器) 등 여러 유물을 발굴했는데, 중국에서는 이 발굴을 중국 근대 고고학의 시작으로 여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는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라고 시작한다. 이민족을 뜻하는 '적(狄)'자 자체가 은의 시조가 이족(夷族)임을 뜻하는데 간적은 목욕하러 갔다가 현조(玄鳥·검은 새)가 떨어뜨린 알을 삼켜 임신을 해서 은의 시조인 설(契)을 낳았다. 시조가 알에서 태어나는 동이족 난생사화(卵生史話)이다.
'은나라 시조 설(契)'의 실체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이 주석을 달았다. 당(唐)나라의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에서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상나라 임금) 반경은 엄(奄·산동성 곡부)에서 북몽(北蒙·안양)으로 옮겼는데 이곳이 은허(殷墟)이다"라고 설명했다.
장수절은 또 "안양성(安陽城) 서쪽에 은허(殷墟)라는 이름의 성이 있는데, 북몽(北蒙)을 이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은 임금 반경이 천도한 북몽이 바로 지금의 하남성 은허이다. 이때부터 주(周) 무왕(武王)에게 멸망할 때까지 이 지역이 수도였기에 상(商)을 은(殷)이라고도 부른다. 은은 주(周) 초기에 이미 폐허가 되어 '옛 터전'이라는 뜻의 허(墟)자를 붙여 은허(殷墟)라고 불렸는데, 중국 남북조 시기 역도원(酈道元·약 470~527년)이 '수경주'(水經注)에서 은허의 위치를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했고, 송(宋), 원(元) 때 이 일대에서 다수의 청동기가 출토되었음에도 중국학자들이 은을 전설상의 왕조로 여겼다. 19세기말~20세기 초의 세기적 발굴로 상(=은) 또한 실존왕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동이족 국가 은 왕조를 둘러싼 중국의 고민
중국이 진행하는 여러 역사공정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내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목적에 맞춰져 있다. 현재 중국에서 '중화민족'이라고 할 때는 56개 다민족 모두를 포괄한다. 물론 중국 공산당이 새롭게 만든 민족개념이다.
그러나 56개 민족 중 하나에 불과한 한족(漢族)이 전체 인구의 91%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이 9% 미만을 차지하는데 불과하다. 반면에 영토로 따지면 현재 중국 영토의 66% 이상은 소수민족의 영토였고 나머지 34%정도가 한족(漢族)의 활동영역이다. 소수민족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면 중국은 현재 강역의 34%정도의 강역에 91% 인구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 중국공산당이 소수민족 통합 또는 억압에 모든 것은 걸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소수민족을 힘으로만 억압할 수 없으니 중국은 처음부터 한족(漢族)의 국가로 시작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온갖 역사공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의 목적은 상(은)이 아니라 하(夏)를 중원 최초의 왕조로 만드는 것이다. 상(은)이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각종 문헌이나 유적, 유물로 보아 중국학자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은이 중국사 최초의 국가라면 동이족이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니 한족(漢族)의 역사를 기반으로 소수민족의 역사를 통합한다는 대전제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설상의 왕조였던 하(夏)의 역사를 실존왕조로 만드는 역사공정이 하·상·주 단대공정이다.
◆양사영의 삼첩층 이론
'하·상·주단대공정' 연구소조는 2000년 9월 15일 중국 정부에 연구결과를 보고했고, 이를 토대로 2000년 11월 10일 '하상주연표(夏商周年表)'를 작성했다. 서기전 2070년에 하(夏)가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하가 서기전 2070년에 건국되었다는 사료는 물론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게 확정지었다. 또한 서기전 1600년에 은이 하를 무너뜨리고 중원을 차지했고, 서기전 1300년에 은 임금 반경(盤庚)이 수도를 북몽(은허)로 천도했으며 서기전 1046년, 주 무왕이 은 주왕(紂王)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차지했다고 연대를 확정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국정 중국사교과서에 하(夏)는 2070년 건국했다고 서술해서 소학교(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역사만들기에 대한 강력한 반론은 이전의 중국학자에게 찾을 수 있다. 청말~민국 시절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양계초(梁啓超)의 아들 양사영(梁思永·1904~1954)이 그런 학자다. 양사영은 청화(淸華)대학을 나온 후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해 1930년 고고학 및 인류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양사영은 중국으로 귀국해 미국에서 배운 고고학 발굴기술을 이용해 은허 및 여러 지역을 발굴해 전야(田野)고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양사영은 여러 발굴 결과 '삼첩층(三疊層)이론'이라는 학설을 발표했다. 서기전 7천년 전의 앙소문화(仰韶文化)와 서기전 5천년 전의 용산문화(龍山文化)와 서기전 3천700여 년 전의 상문화(商文化)는 서로 계승관계에 있는 연속문화라는 것이다. '앙소문화→용산문화→상문화'는 같은 민족이 만든 문화라는 것인데 그 민족이란 동이족을 뜻한다. 중국에서 세계 4대문명의 하나라고 자랑하는 황하문명의 핵심이 용산문화인데, 이 역시 동이족문화라는 것이니 한족(漢族)의 문화는 과연 언제, 어디에서 생겼는지 의문이 생기기 않을 수 없다.
◆이리두문화가 하왕조의 문화?
중국은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만들기 위해 '하·상·주 단대공정'을 진행했고, 그 결과 한족(漢族)의 국가인 하(夏)가 서기전 2070년에 세워졌다고 확정지은 것이다. 현재 중국은 하남성 낙양시 언사구(偃師區)의 이리두촌(二里頭村)을 중심으로 하는 이리두문화가 하 왕조의 문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문화가 이리두문화로 이어졌다는 것으로 이리두문화가 한족의 하왕조 문화라는 것이다. 이는 역사와 고고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 보면 그 모순이 금방 드러난다. 앞선 용산문화와 뒤의 상문화가 모두 동이족 문화인데 그 중간의 이리두문화가 하늘에서 떨어진 한족(漢族)의 하문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
필자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문제는 늘 한국의 역사학계에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 외에 서남공정과 서북공정도 진행했다. 고조선을 부인하고 부여, 고구려, 발해(대진)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것이 동북공정이라면 서남공정은 중국이 1950년 10월 한국전쟁을 기회로 삼아 점령했던 티베트지역에서 벌어졌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것으로 티베트공정으로도 불린다.
서북공정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벌어졌던 역사를 중국사로 포함시키는 역사공정이다. 중국은 이런 역사공정을 통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경내에서 벌어졌던 모든 역사를 중국사로 만드는 한편 한족(漢族)이 중국 최초의 국가 하(夏)를 건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선전공정 중으로 그간 국가 차원에서 전개했던 각종 역사공정의 내용을 공자학원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하는 국가공정이다.
중국의 이런 역사공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고, 이에 맞서는 전사(戰士)가 되어야 할 집단은 한국 역사학계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학계는 중국 역사공정의 한국 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이족 문명인 홍산문화를 부정하고, 단군조선의 역사와 그 강역을 축소 또는 부정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진핑은 여전히 중국의 국가주석인 가운데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중국은 최근 딥시크로 AI패권 장악에 나섰는데 중화문명 이 딥시크가 중화문명 선전공정의 주요한 도구가 될 것임은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 여야 정치권은 모두 손을 놓고 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응해야 할 이 나라 역사학계는 "동이족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라고 중화문명 선전공정 한국지부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이 민족, 이 국가의 미래존속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김상욱, 울산시당위원장 사퇴…"尹 탄핵 나선 것 후회 안 해"
이재명, 대장동 1심 공판 출석…당 회의선 "국힘, 극우 정당도 아닌 범죄 정당"
'행번방 논란'에…경찰, 문형배 동창카페 음란물 유포 의혹 수사 착수
전한길 "尹 탄핵되면 제2의 4·19혁명 일어날 것"
이광재, 이재명 겨냥 "정신 좀 차리자…전 국민 25만원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