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김영경] AI 디지털교과서의 운명은

입력 2025-01-05 13:20:26 수정 2025-01-05 17:32:30

교과서→교육자료 규정 法 통과하며 무산 위기
정책 추진 과정서 정책 수요자부터 설득했어야

김영경 사회부 기자
김영경 사회부 기자

정부의 교육 개혁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AI 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교육자료 지위가 되면 학교의 의무 도입 필요성이 없어져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AI 교과서를 전면 도입하려던 정부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다.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해 온 교육 현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작금의 상황은 사실 애초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정책 수요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일방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가 학부모·교원 등 10만6천4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6%가 AI 교과서를 교과서 지위로 도입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교원 단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수학 교사 10명 중 9명이 AI 교과서에 교과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반대했다.

교육 현장의 반대가 이처럼 극심한 데에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책 수요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탓이 크다. 실제로 정부는 2023년 6월 AI 교과서 추진 방안 발표를 시작으로, 2년 동안 교사 연수·인프라 확충 등 AI 교과서 도입을 빠르게 추진해 왔다. 하지만 교육계 및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우려를 불식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8월 예정됐던 AI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가 11월 말로 연기되며 교사들은 도입 3개월 전까지 실물 교과서를 보지 못했다. 학부모들 또한 AI 교과서를 직접 체험해 볼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각에서는 다수의 교사·학부모들이 제기하는 불신, 부작용 우려와 관련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AI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수업 시간 내내 디지털 기기만 보고 있을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사라질 것이다' '소통이나 협력 활동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단순한 문제 풀이용으로 전락될 것이다' 등 디지털 역기능 또는 디지털 기술의 효용성에 관한 오해들 말이다.

대구 지역 디지털 선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초등교사는 "AI 교과서는 학습 환경을 설계하는 하나의 수업 보조 도구일 뿐이다"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들의 학습 수준을 파악하고 개별 맞춤형 지도를 할 수 있어 수업 진행에 도움이 됐고 학생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초등교사도 "현장에서 수업 시간 내내 AI 교과서만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는다"며 "전문성을 가진 교사들이 AI 교과서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더 좋은 수업을 만드는 게 디지털 혁신의 핵심"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교과서 지위는 인정하되 전면 도입을 1년 유예'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 정국 혼란 속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갈등의 중심에 있는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향후 국회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소통하고 학교 현장의 혼란도 최소화시키겠다"고 했다. 국회에 앞서 AI 교과서를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게 될 교사와 학생, 학부모부터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