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70> 범람하는 시간,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

입력 2024-12-30 11:36:29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디즈니 판타지아 포스터. 인터넷 갈무리
디즈니 판타지아 포스터. 인터넷 갈무리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몇 날이 세찬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세월을 흔히 흐르는 물이나 쏜 살에 비유한다. 사람은 이 세월 속을 여행하는 나그네다. 시냇가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흐르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비유는 이렇게 의미하고 지향하고 포괄하면서 보잘것없는 인간의 삶을 심화, 확장한다. 언어가 기계적인 정확성에 갇혀 있다면 삶은 얼마나 더 삭막하고 보잘것없어질 것인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의 주기성은 그 자체로 거대한 리듬이자 음악이다. 음악은 신체의 운동 리듬을 따른다. 맥박, 심장 박동, 걸음걸이의 속도는 음악의 리듬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시간 예술인 음악의 움직임은 이러한 물리적인 운동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리 오너라 너 낡은 빗자루야!/ 이제 내 뜻을 쫓으라!/ 두 다리로 서고/ 머리를 위로 하고/ 물통을 들고/ 서둘러 걸어가라!

물결쳐라! 물결쳐라,/ 넘치도록 파도치며/ 욕조를 가득 채워라/ 큰 물거품을 뿜으며 흘러가라!

파울 뒤카(Paul Abraham Dukas, 1865~1935)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는 스승이 출타한 사이 어깨너머로 배운 마술을 시험하려던 제자가 곤경에 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자는 낡은 빗자루에게 마술을 걸어 물을 길어 오라고 시키고, 빗자루는 쉬지 않고 물을 길어와 어느새 집이 물바다가 된다. 당황한 제자는 빗자루를 멈추려 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도끼를 들고 와 두 동강 내지만 동강 난 빗자루는 다시 벌떡 일어나 물을 길어온다. 물은 넘쳐 홍수가 되고 격류가 되어 흐른다. 스승이 돌아와서야 끔찍한 물난리는 끝이 난다.

'마법사의 제자'는 괴테의 발라드 '마법사의 제자'를 스케르초 풍의 관현악곡으로 작곡했다. 이 곡은 서주, 스케르초, 코다의 3부분으로 구성되며 서술 묘사의 극치를 이룬다. 마법사의 제자를 나타내는 바이올린 주제와 빗자루를 나타내는 클라리넷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나 곡을 전개하고, 호른과 바이올린이 주제를 이어받으며 물이 불어난다. 물이 급격히 불어나 물난리가 날 즈음에는 심벌즈가 큰소리로 홍수의 다급한 현장을 들려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는 미키마우스가 마법사의 철없는 제자로 등장해 곤욕을 치른다. 전설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즈니가 시와 음악, 애니메이션이 어우러지는 흥미진진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뒤카의 화려한 색채와 생생하고 강렬한 리듬은 괴테 시의 해학성을 잘 살리고 있어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마법사의 제자'는 범람하는 시간의 이미지를 들려준다. 시간의 지배란 지배된 시간에 의해 다시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이것은 범람하는 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역시 말의 지배란 지배된 말에 의해 다시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또 물은 주술이자 도취인 음악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모든 생명은 생성과 소멸의 흐름 속에 있다. 시간도 이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