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오동욱 박사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곳이 대구죠"

입력 2024-12-25 14:03:50 수정 2024-12-26 07:46:03

'대구 연구만 20년'…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인터뷰
대구간송미술관 유치·근대골목투어 자문 등 대구 지역문화 사업 힘 보태
"산도 강도 바다도 없는 대구, 250만 대도시인 이유는 '문화적 정신' 때문"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대구 이야기 '대구문화 오디세이' 유튜브 채널도 운영

대구정책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대구정책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대구문화 오디세이'까지 운영하는 '대구 찐팬'이다. 한소연 기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

이 구절을 보면 대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구정책연구원에서 사회문화를 연구하는 오동욱 박사다. 경북대 경영학과, 중앙대 대학원 문화콘텐츠 마케팅을 전공한 오 박사는 2007년부터 대구정책연구원에서 20년 가까이 대구 문화만을 연구한 대구 '덕후'(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다.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숱하다. '대구 문화산업 육성',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 '대구간송미술관 유치', '국립 구국운동기념관 건립' 등이 대표적이다. 퇴근하고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대구문화 오디세이'까지 운영하는 '대구 찐팬', 오 박사를 지난 23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대구 문화콘텐츠 마케팅의 대가라고 들었다. 그간 하신 일이 궁금한데.

▶가장 최근에는 대구 간송미술관 유치 계획을 대구시와 함께 만들었다. 중구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설립에도 참여했다. 대구 예술발전소나 근대골목 투어 등 대구의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만든 콘텐츠에는 대부분 관여했다고 보면 된다.

대구간송미술관. 매일신문DB
'북성로 문화플랫폼 및 도시브랜드 구축 사업(향후 3년간 15억원 투입)'이 대구도심에 또 다른 활력을 더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대구근대골목투어 안내판. 매일신문DB

-대구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게 된 이유가 뭔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 대구가 떠오른다. 경남 합천에서 나고 대구에서 오래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바다도 없고, 큰 강도 없고, 산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 이 도시에 250만명이나 사는 것이 말이다.

거대한 인구 규모를 지탱하는 힘은 분명 이곳에 오랜 시간 동안 짙게 내려앉은 문화적 정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대구를 있게 한 역사적 인물들과 공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육사, 유치환과 조지훈, 박목월과 박두진 등 시인들이 살았던 곳, 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곳 등 대구에는 문화적인 명소들이 많다. 그런 문화역사적 맥락 때문인지, 현재 대구 시민들의 문화 감수성도 높다. 실제로 인구 대비 공연을 많이 보는 사람, 뮤지컬 매니아 수가 전국에서 많은 게 대구다.

나는 이런 점적인 공간을 선으로 잇고, 선을 모아 면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250만 인구라는 대구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원래부터 문화에 관심이 많았나.

▶전공은 경영학이다. 경영학과에서 문화콘텐츠 마케팅을 전공했다. 기업들이 주도하는 문화적인 마케팅을 정부 기관에서도 하는 것이 미래의 새로운 트렌드로 정책할 거라는 인식이 싹틀 무렵이었다.

어릴 적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 아버지께서 서점을 하신 덕에 팔아야 할 새 책을 몰래 읽곤 했다. 주로 고전 명작이거나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같은 어린이 서적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인문학서를 읽어서 지역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학이나 역사 관련 전공도 아닌데, 문화를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다.

▶연구원 초반 당시 원장님은 문화가 경제를 더 아름답게 가꾼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연구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원장님이 '현장에 가라'고 강조하셨다. 그냥 책상에 앉아 글만 보면서 누구에게나 두루 좋을 만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대구에 있는 예술계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보고서를 쓰라고 요구하셨다.

예술계 현장을 알기 위해서 예술계의 모든 원로들을 만나러 다녔다. 예술계에는 전공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은근한 배타성이 있다. 그들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현장에 필요한 연구 보고서를 쓰니까 점차 나를 인정해 주더라. 그러는 데에만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있다. 오 박사는 대구간송미술관 유치 계획을 만든 장본인이다. 매일신문DB
대구간송미술관. 매일신문DB
대구정책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있다. 오 박사는 대구간송미술관 유치 계획을 만든 장본인이다. 매일신문DB

-그렇게까지 지역 문화를 알리는 데 열정적인 이유가 있나.

▶세상을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것이 단절이고 분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선배들이 살았던 모든 것을 읽어내고, 의식하고 또 기억해야지만 단절되지 않는다. 의식하고 기억할 만한 고귀한 역사적 장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현재의 대구에 사는 시민들도 알면 좋겠다. 알면 더욱 사랑스럽지 않은가.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아껴야 내 자식과 그 후대 사람들도 똑같이 그럴 것이다. 내게 결혼 7년 만에 얻은 소중한 딸이 있다. 딸이 살아갈 동네를 더 뜻깊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지역 고유의 역사를 관광 콘텐츠로 만들지만 예산을 들여 만들어놓고 사후 관리를 등한시하는 문제도 많다.

▶저예산 시대다. 이건 피해 갈 수 없다. 예산 탓만 할 게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유통 공유'라는 개념이 있다. 문학관, 박물관, 미술관 등 각기 다르지만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는 대체로 결이 비슷하다. 그러면 각각의 기관이 따로 하지 말고 유통을 공유하면 그만큼 예산도 아낄 수 있다. 문화 네트워킹을 잘하는 것이 저예산 속에서도 양질의 사업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오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대구정책연구원 오동욱 박사는 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대구문화 오디세이'까지 운영하는 '대구 찐팬'이다.한소연 기자

-사업화되지 않은, 유망한 대구의 문화 공간도 있나.

▶대구 중구 약령시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약령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또 한강 이남에서 제일 오래된 문화거리가 대구 중구 봉산 문화거리다. 과거 갤러리 밀집 지역이었고 화가 이중섭과도 연관이 돼있다. 향촌동 거리도 있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문화적 공간이 있는데 문화관광 사업으로의 개발이 더디다.

-타지역 사람들에게 '대구에 오면 꼭 가야 한다!'고 추천할 만한 곳이 있을까.

▶두 가지 갈래로 나눠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관광을 왔는지, 대구를 알기 위해 왔는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단순 관광으로 왔다면 낮에는 대구간송미술관을 가고, 저녁에 수성못과 서문시장을 가셔라.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보셔도 좋다. 대구를 알기 위해서 왔다면 청라언덕~계산성당, 이상화 고택과 향촌동으로 이어지는 대구 근대골목 투어를 하시면 가장 좋다.

오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대구문화오디세이' 홈 화면 캡쳐.

-대구의 역사, 지명 유래, 인물 등 전반을 소개하는 '대구문화오디세이'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매주 올리고 있다. 2022년에 오픈해서 벌써 130주가 지났다. 이것도 7년 정도 준비했다. 연구원에서 연구를 오랜 시간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졌었다.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대구 이야기를 더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그치듯 만든 채널이다.

운영을 해 온 지난 2년간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협업 제안이 많이 왔지만 전부 정중히 거절했다. 아직은 순수한 열정으로만 영상을 제작하고 싶어서다. 아무 대가 없이 철저히 일과 외 시간에 작업을 하는데 이게 너무 즐겁다.

-앞으로 유튜브에 올라갈 콘텐츠가 궁금하다.

▶7년간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서 역사 전통자산, 예술축제 등 30개 테마로 대구 역사를 나눠놨다. 테마 하나당 열다섯 개 카테고리로 나눠지더라. 그러니까 800개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난주에 130주 차 영상을 올렸으니 아직 670개의 대구 이야기가 남아있다.

대구가 시각장애인들의 메카다. 대한민국 최초의 맹아학교가 만들어진 게 대구고 만든 사람이 대구의 이영식 목사다. 시각장애인의 메카가 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또 대구를 흔히 '교육의 수도'라고 하는데, 왜 교육 수도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할 계획이다. 조선시대 서원이 가장 많은 곳이 대구경북이었다. 서원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립학교다. 교육 열의가 높았다는 증거다. 이런 역사와 맥락을 짚어보는 영상도 올라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