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옛날에 왕이 벼룩과 함께 살고 있었네.
아, 벼룩? 벼룩. 왕자보다 더 귀여워했네.
벼룩. 하하하. 벼룩? 하하하. 벼룩.
솜씨 좋은 재봉사를 불러 명령했네.
"벼룩의 비단 외투를 멋지게 만들거라"
뭐? 벼룩의 외투? 하하하. 벼룩.
하하하 외투. 하하하. 외투를.
비단 외투를 걸친 벼룩은 궁전 안을 마음껏 활보하며 거드름을 피웠네.
하하하. 벼룩. 하하하하하하.
벼룩은 1등 훈장을 가슴에 달고서
한 무리의 벼룩을 부하로 거느리고 다닌다네.
왕비와 궁녀를 가리지 않고 물고 다니네.
하지만 가렵고 따가워도 두려워 손대지 못하네.
만약 우리라면 벼룩 같은 건 바로 죽이고 말 텐데.
하하하 하하하하.
'벼룩의 노래'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우어바흐 술집에서의 메피스토펠레스의 노래(Mephistopheles's Song in Auerbach's Cellar)에 등장한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대가로 젊음을 얻는다. 이들은 결혼 피로연이 한창인 마을의 선술집에서 취한 대학생들에게 왕이 총애하는 벼룩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노래는 작센 공국의 간신들을 벼룩에 빗대었다. 베토벤, 베를리오즈, 무소르그스키 등의 작곡가가 '벼룩의 노래'에 곡을 붙였지만 이 중 무소르그스키의 곡(1879)이 가장 개성적이고 강렬하다.
벼룩은 피를 빨고 병균을 옮기는 기생충이다. 크기는 2-4mm 정도로 작지만 뒷다리가 길어(?) 자기 몸의 10배인 20-32cm까지 도약할 수 있다. 벼룩은 오래도록 사회의 불합리나 부조리, 허위 등에 가해지는 속담에서 기지 넘치는 비판과 조소를 던지는 의미 있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 왔다. "뛰어봐야 벼룩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 등 벼룩은 대상을 풍자하는 데 있어 희극적인 요소를 더하고 문제에 대한 적절한 치유 효과를 던져주는 의미심장한 역할을 해왔다. 남의 피를 빨아먹는 하잘것없는 벼룩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으면 현실을 비판하고 공격하면서도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고 부정적인 것들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을 생성한다. 이러한 비유는 사회를 유쾌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현실을 이겨나가도록 고무한다. 만고에 쓸모없는 벼룩도 이렇게 중요한 쓰임새로 사용될 때가 있다.
풍자는 시대상이나 사회 분위기와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고 시대를 넘나든다. 괴테의 '벼룩의 노래'는 당대 작센 공국의 간신들을 풍자했지만 무소르그스키를 통해 제정 러시아의 정치와 종교를 풍자했고 오늘에 와서는 우리의 불완전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괴테의 시에 없는 무소르그스키만의 독창적이고 호탕한 웃음이 답답한 속을 뻥 뚫어놓는다. 시원시원한 풍자와 음흉한 자들을 조소하는 대담한 웃음소리가 벼룩의 도약을 묘사하며 듣는 사람을 단번에 홀린다.
슈퍼 페이크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정도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그들만의 능력으로 세상을 주름잡는다. 이미지의 세상이 가짜를 양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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