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칼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범죄혐의자의 대선 출마

입력 2024-12-15 17:52:34 수정 2024-12-15 19:16:34

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가 파면 여부를 180일 이내에 결정하게 된다. 탄핵안 기각이든 인용이든 엄청난 정치·사회적 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인용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바로 15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범죄 혐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사태가 불러올 윤리적·도적적·법률적 혼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은 중대한 시험을 맞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혐의 중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는 1심에서 각각 당선 무효형과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선 전에 대법원이 각각 당선 무효형과 금고형 이상을 확정하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전에 판결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골치가 아파진다. 헌법 제84조는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재임 중 대통령은 형사소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 재판이 계속되는지 중단되는지, 계속돼 유죄가 확정됐을 때 대통령직을 유지하는지 못 하는지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헌법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제정 당시 상정하지 못했던 사태들이 속출하는 인간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다. 이를 미국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스는 이렇게 갈파(喝破)했다. "신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완전하게 작동하는 통치 체제를 개발하는 지혜를 그 어떤 정치인이나 철학자에게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지혜의 부재를 메우는 것이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 즉 상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 상식이란 '갖은 지연 전술로 재판을 질질 끌어온 범죄 혐의자가 대통령 탄핵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유죄인지 무죄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악해서는 안 된다'쯤 될 것이다.

이 상식이 실천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가치관의 대전환(도덕과 윤리의 타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가다듬어 온 도덕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가 되면 그만'이라는 새 가치관으로 대체될 것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앞선 세대의 '바르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는 가르침은 '꼰대'들의 물정 모르는 헛소리가 될 것이며, 윤리 교과서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도덕적 아노미로 빨려 드는 것이다.

이 대표는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이 접수됐지만 한 달이 거의 다 되도록 변호인을 선임(選任)하지 않고, 소송기록접수 통지도 수령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재판을 시작할 수 없다. 명백한 재판 지연 의도이다. 이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정치 검찰의 창작'이라고 해 온 그간의 주장과 배치되는 행태다. '정치 검찰의 창작'이 사실이라면 신속 재판을 자청(自請)하는 게 상식에 맞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없음을 본인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범죄 혐의자의 대권 도전이라는 혼돈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하려면 법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이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소요 기간(63일, 91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차기 대선은 앞으로 150일 이내, 즉 내년 5월 중순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준수를 강조하는 선거법 규정(1심 6개월, 2·3심 각 3개월)대로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 2·3심이 진행된다면 대법원 판결은 내년 5~6월에 나올 수 있다. 최종심이 대선 전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범죄 혐의를 안고 대선에 출마하는 사태가 현실화된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다.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만큼 유죄나 무죄 심증만으로 지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자 무엇보다 심각한 오판을 낳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 대표 재판을 속도전으로 치러야 한다.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은 대선 전 대법원 판결이 어렵다면 2심만이라도 빨리 선고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최소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2심을 무제한 미룬다는 풍문이 돈다. 풍문이 사실이라면 법치는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