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대구의 나무로 읽는 역사와 생태 인문학
이종민 지음/학이사 펴냄
#1. 조선시대 중종반정 이후 사림의 등용과 득세로 동요한 훈구세력이 신진 조광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기묘사화의 단초는 나뭇잎에 새겨진 '走肖爲王(주초위왕)'의 글씨다. '走肖'는 성 '趙(조)'자를 파자(破字)한 말로, 벌레들이 갉아먹은 듯한 이 글씨가 새겨진 나뭇잎이 궁중에서 발견되자 이를 빌미로 역습한 훈구세력이 사림파를 대거 숙청했다. 그런데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뽕나무다. 인류에게 비단을 선물한 뽕나무의 이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숨어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망명해 지금의 계산동에 뽕나무 밭을 조성하고 양잠에 힘썼다.
#2. 우리나라에서 아까시나무 흰 꽃이 가장 일찍 피는 지역은 어디일까?
답은 대구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예측 조사에 따르면 올해의 경우 제주도보다 하루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보편적인 개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대구에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붙인 나무가 많다. 중구 달성공원의 서침나무, 대구제일교회의 현제명나무, 중구 종로초등학교의 최제우나무, 동구 옻골의 최동집나무, 중구 천주교대구대교구청의 타케나무 등이 좋은 예다. 사실 이 나무들의 식물학적 이름은 회화나무, 이팝나무, 왕벚나무로 이들의 뿌리를 찾고 배경을 수집해 엮으면 지역의 훌륭한 문화 자원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육군 제2작전사령부인 무열대에는 무열수라는 그 자체로 역사인 수백 년 된 모과나무 노거수도 있다.
30여 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나무 이야기를 한데 모은 이종민 작가의 '대구의 나무로 읽는 역사와 생태 인문학'이 출간됐다. 나무보다 전자기기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오늘날, 모르면 무심코 지나가기 바쁜 나무들에 얽힌 역사와 설화에 주목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발을 딛고 있는 대구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자란 나무와 새롭게 뿌리내리는 나무들을 중심으로 인문학적 고찰을 곁들였다. 나아가 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선조들을 통해 우리가 자연과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책은 계절의 흐름에 따른 4부로 구성돼 총 21종의 나무를 담아냈다. 1부에서는 봄을 '뭇 꽃들 경쟁'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비롯해 왕벚나무 자생지가 한국임을 밝힌 프랑스인 선교사 타케 신부 등 꽃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2부 여름에서는 '신록의 잔치'를 주제로 한창 커가는 나무의 화양연화 세계를 다뤘다. 조선 세종 때 달성토성 땅을 정부에 헌납한 서침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서침나무라 명명한 수령 200년이 넘는 회화나무부터 천년을 꿈꾸는 장수목 느티나무까지 푸릇함의 연속이다.
3부 가을에서는 '화려한 결실'에 따라 울긋불긋한 단풍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도동서원 입구의 400여 년 된 샛노란 은행나무의 독특한 수형 모양은 온갖 시련과 압박에도 선비 절개를 간직한 고고한 풍모를 보여준다. 마지막 4부 겨울은 '홀로 선 나무'를 주제로 추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 전나무, 측백나무 등에 주목한다. 달서구 죽전동, 달성군 죽곡리 등 지명에서도 대나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 이종민은 포항 청하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나무와 함께 생활했다. 이후 1991년 언론계에 입문해 1994년부터는 매일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편집부장과 선임기자를 역임했다. 현재는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를 신문에 연재 중이다. 사람이 기거하는 지역부터 깊은 산골이나 벌판에 서있는 대구·경북의 노거수와 정원수,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을 탐독하며 계절마다 찍어 모은 사진들이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전한다. 304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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