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없어야 할 '6·25 아픔'…'우발적 미래의 시원' 전시

입력 2024-12-03 16:10:27

한국전쟁 75주년 앞두고 문화적 기억 재구성…22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

한국 전쟁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변한 풍경과 사회적 단절, 그리고 신체의 서사를 표현한 조은재 작가의 작품.
한국 전쟁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변한 풍경과 사회적 단절, 그리고 신체의 서사를 표현한 조은재 작가의 작품.

한국 전쟁 75주년을 앞두고 참혹함과 슬픔, 전쟁의 기억과 후기억, 그리고 상처 가득한 전쟁의 파편들,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아린 역사를 재조명하는 특별한 전시가 3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개막됐다.

'우발적 미래의 시원(始原)' 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 사업으로 22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1950년대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작고 사진가 한영수를 비롯한 3~40대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총 14명의 다매체 작가들이 참여해 폐기물 소각장에서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부천아트벙커B39를 재해석한다. 또한 사진과 영상·설치·음향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와 현재·미래를 잇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서사를 제시하며 한국전쟁의 문화적 기억이 오늘날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확장되는지를 체험하는 장을 마련한다.

전시 구성은 부천아트벙커B39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해 5개의 전시 섹션과 1개의 퍼포먼스 섹션으로 나뉜다.

임노아 작
임노아 작

전시 구성을 미리 살펴보면 에어갤러리(1F)와 발코니(2F)에 마련된 ▷'기억의 환승'은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흔이 사회적 구조와 개인적 경험 속에서 어떻게 상징화되고 재매개되는지를 다매체 설치 작업으로 탐구한다. 안성석의 작업은 거창추모공원의 기울어진 위령비를 현대적 시각 언어로 재해석하며, 관객 참여를 통해 역사적 기억이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발코니에 전시된 임노아, 조은재, 김의로의 작업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변한 풍경, 사회적 단절, 그리고 신체의 서사를 통해 복합적인 문화적 층위를 형성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중앙제어실의 ▷'우발적 미래'는 전후 일상 공간에 스며든 전쟁 후기억의 문제를 탐구한다. 한영수의 사진 '닭장수'(1957)는 전후 서울의 삶에 남아 있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시각적으로 환기하며, 안성석의 영상 작업은 영화 '오발탄'을 재매개해 1950년대에 잠재된 트라우마의 단층을 오늘의 시각으로 새롭게 드러낸다.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1999)은 미공군 폭격 연습터의 풍경을 통해 트라우마적 시각과 현대 지정학적 문제를 교차적으로 다룬다. 마지막으로 이재갑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학살 현장에 세워진 증오비와 위령비를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트라우마의 흔적이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남긴 균열을 비추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크레인조종실과 유인송풍실(2F)에 마련된 ▷'에레혼'과 ▷'주체성의 영역'은 함혜경의 '멀리서 온 남성'과 신이피의 영상 작업을 통해 DMZ와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전쟁과 관련된 기억과 서사가 관객의 경험과 교차하는 지점을 제시한다.

강용석의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1999)은 미공군 폭격 연습터의 풍경을 통해 트라우마적 시각과 현대 지정학적 문제를 교차적으로 다룬다.

유인송풍실(1F)의 ▷'시간의 결정체'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연결되고 재구성되는지를 탐구한다. 김전기의 작업은 동해안에 남겨진 군사적 표상과 흔적을 추적하며, 현재에 잠재된 역사의 층위를 성찰한다. 나인수의 '앤지의 첫 번째 결혼'은 전후 한미 관계 속에서 형성된 모계 3대의 비극을 통해, 전쟁과 일상이 교차하는 트라우마적 맥락을 드러낸다. 김옥선의 '빛나는 것들' 연작은 제주의 생태적 풍경을 사진으로 재구성하며, 이주 식물과 나무의 초상을 통해 제주 정체성의 다층적 서사를 제안한다.

퍼포먼스 섹션으로 ▷'후회 없는 제스처'(응축수탱크영역 3F, 공연: 7일 오후3시, 4시 총2회 각 20분)는 송미경의 작업으로 사회적 억압과 기억의 구조를 음향과 몸짓으로 해체하며, 감각적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기억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정훈(계명대학교 사진미디어과 교수) 프로젝트 총괄 기획자는 "'우발적 미래의 시원' 전시를 통해 관객이 복합적인 기억의 층위를 경험하며, 새로운 서사의 출발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훈 계명대학교 사진미디어과 교수 제공
정훈 계명대학교 사진미디어과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