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타고난 재능 vs 허영서 갈고닦은 실력…1~3년 소리 연마
1950년대 분위기 그대로 재현…완성도 있는 '극중극'도 관전 포인트
국극에 청춘을 바친 여성 소리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N 드라마 '정년이'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첫 회 시청률 4.8%로 출발해 4회 만에 12.7%를 기록하며 화제 몰이를 하고 있는 것.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1950년대 국극단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연대와 선의의 경쟁을 그려내며 익숙한 감동을 자아낸 것이 작품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방송계에 따르면 정년이는 열아홉살까지 바닷가 시골 마을 목포에서 바지락을 캐고 생선을 팔며 살았다. 국극이란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랬던 정년이는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어주는 스승들을 만나며 꿈을 향해 한발짝씩 나아간다. 그의 재능을 발굴한 매란국극단 스타 문옥경(정은채),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도록 이끌어준 패트리샤(이미도), 국극 배우의 자질을 가르쳐준 매란국극단장 강소복(라미란) 등이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
좋은 스승과 재능 있는 제자. 여기까지가 성장물에서 흔히 봐온 설정이라면, '정년이'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정년이와 그의 라이벌 허영서의 이색적인 경쟁 구도에 있다.
정년이가 독특한 음색을 타고난 천재라면, '성골 중의 성골'이라 불리는 허영서(신예은)는 일찍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노력파다. 국창 밑으로 들어가 10년 동안 뼈를 깎는 수련을 거쳤고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다.
영서는 배워본 적도 없이 엄청난 소리를 뽑아내는 정년이의 천부적인 재능을 동경하고, 정년이는 영서가 갈고 닦아온 안정적인 실력 앞에서 초조해진다.
서로를 부러워하고 질투하지만, 둘은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 서로를 거울삼아 함께 발전하는 선의의 경쟁을 보여준다. "치사하게 수작 부려서 이기기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맞붙어서 이기겠다"며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며 성장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연합뉴스를 통해 "성장 서사에서 단골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라이벌 구도"라며 "'정년이'는 꼭 상대방을 꺾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단순한 방식에서 벗어나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독특한 이야기를 펼쳐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패보다 승부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소녀들의 뜨거운 성장 드라마는 배우들의 진정성이 더해져 시너지를 낸다.
김태리는 3년간 소리를 배웠고, 신예은도 1년 넘게 소리를 배우며 극을 익혔다. 드라마 속 장면들은 약간의 후보정을 거쳤지만, 배우들의 실제 노래 실력으로 만들어졌다.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기까지 길게는 1년 이상, 짧게는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는 극중극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드라마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춘향전', '자명고' 등 완성도 높은 국극 작품을 선보인다. '춘향전' 공연 분량은 드라마 전체 시간의 3분의 1인 20여분에 달하고, '자명고'도 15분 분량으로 다뤘다.
시대극의 몰입감을 높이는 세트와 소품도 눈길을 끈다. 연출을 맡은 정지인 PD는 "영화 '오발탄', EBS '명동백작', 한영수 작가의 사진집, 박완서 작가의 소설 등을 주로 참고했다"며 "1950년대 분위기를 드라마 속에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총 12부작으로 만들어진 '정년이'는 앞으로 4회를 남겨뒀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좌절한 정년이가 위기를 극복해낼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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