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능호관 이인상이 29세 젊은 날 나무와 돌을 그린 '수석도'다. 나무는 종류가 다른 세 그루지만 중앙의 우뚝한 소나무가 주인공이다. 돌은 나무들 발치의 바윗돌로 배경의 암벽으로 그렸다. 암벽 뒤쪽의 산줄기는 눈 그림자인 듯 흰 그늘의 어둑한 선염이고, 나뭇잎과 가지도 무언가 어슴푸레 해 이인상 식의 설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 아래에 써넣은 글을 보면 겨울 풍경이다. 먹의 강약으로 글자에 리듬을 주며 쓴 어눌한 듯 멋스러운 필치다.
수한이수(樹寒而秀)/ 나무는 날씨가 차가워도 빼어나고
석문이추(石文而醜)/ 돌은 문채가 있으나 못생겼다
무오(戊午) 중하(仲夏) 인상(麟祥) 희사(戱寫)/ 무오(1738년) 중하(5월) 인상(이인상)이 그려보다
제화 여덟 글자는 중국 문인인 소식의 글을 살짝 바꾼 것이다. 소식은 문동의 그림에 대한 찬문에서 "대나무는 날씨가 추워도 빼어나고, 나무는 말랐어도 오래 살며, 돌은 못생겼어도 문채가 있다. 이것이 세 가지 유익한 벗이다. 깨끗함이 가까이할만하고, 아득히 먼 뜻이 있어 구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식은 스스로도 이 세 벗을 고목죽석도(枯木竹石圖)로 그렸다.
이인상은 소식이 삼익우(三益友)라고 한 죽(竹), 목(木), 석(石) 중에서 대나무가 아닌 소나무를 그리면서 '죽한이수(竹寒而秀)' 대신 '수한이수(樹寒而秀)'라고 했다. 소나무는 세한(歲寒)에도 푸르고 설송은 더욱 장관이다. 고려 이제현은 시 '산중설야(山中雪夜)'에서 암자 앞 '설압송(雪壓松)'을 보려 아침 일찍 방문을 연다고 했다. 흰 눈에 덮인 솔은 녹색이 더 짙고 솔잎은 눈 속에서 더욱 쨍쨍하다.
예로부터 나무와 바위에 자아를 투영한 문인이 많았다. 비가 오나 바람 부나 항상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해마다 나이테를 더하는 나무,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는 바위를 하나의 인격체로, 군자로 바라봤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이인상은 진사시에 합격은 했으나 아직 벼슬자리를 얻지 못해 이곳저곳 셋집을 옮겨 다니며 근근이 견디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꿋꿋한 소나무처럼, 묵묵한 바위처럼 살리라는 다짐을 이렇게 고상하게 그렸다. 계절은 오월이었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의 영혼은 굳세었다.
'수석도'는 역경 속에서도 수신(修身)을 다짐하는 그림이다. 주제에 있어서나,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나, 형사(形似)가 아니라 신사(神似)를 추구한 표현법에 있어서나 이인상의 걸작 '설송도'가 하루아침에 나온 그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림은 바로 그 사람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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